할리데이비슨 팬 아메리카, 크루저 명가가 해석한 어드벤처 투어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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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데이비슨 팬 아메리카(Pan America)가 국내에 상륙했다. 할리데이비슨 코리아가 마련한 ‘팬 아메리카 어드벤처 캠프’를 통해 할리데이비슨의 첫 번째 어드벤처 투어러를 경험했다.

개인적으로 올해 출시하는 모터사이클 중 가장 궁금했던 기종이 바로 팬 아메리카였다. 할리데이비슨이 최초로 선보이는 장르의 모터사이클이기 때문이었다. 할리데이비슨은 크루저의 대명사와도 같은 브랜드다. 그들의 정체성은 뚜렷하다. 비(非)라이더도 ‘할리’라고 하면 단번에 안다. 손을 치켜 올리며 이렇게 타는 모터사이클이 아니냐고 되묻기도 한다. 라이더 사이에서도 할리데이비슨의 이미지는 확고하다. 크루저 일색의 라인업에 철의 질감을 간직한 고집스러운 브랜드. 그런 할리데이비슨이 오프로드를 달리는 어드벤처 투어러를 만들었으니 호기심이 생길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궁금증과 함께 걱정도 있었다. 리터급 멀티퍼퍼스 시장은 이미 레드 오션이다. 경쟁 기종은 그 수가 많고 각자의 강점도 뚜렷하다. 이미 BMW R1250GS가 정상에 군림하고 있고 혼다 아프리카 트윈은 DCT(Dual Clutch Transmission)라는 무기가 있다. 스즈키 브이스트롬 1050은 뛰어난 가성비의 올라운드 플레이어이며, 트라이엄프 타이거 1200은 3기통 엔진에 빈틈 없는 구성으로 높은 완성도를 자랑한다. 출시를 앞두고 있는 두카티 멀티스트라다 V4는 170마력 이상의 최고 출력을 발휘하는 화끈한 멀티퍼퍼스다. 이 같은 쟁쟁한 경쟁 상대를 두고 후발주자로 나선 팬 아메리카가 어떤 경쟁력을 내세울지, 과연 이 치열한 세그먼트에서 살아 남을 수 있을지 우려가 앞섰다. 호기심 반, 걱정 반 그리고 조금은 설레는 기분으로 ‘팬 아메리카 어드벤처 캠프’가 열리는 영종도로 향했다. 

할리데이비슨 코리아가 주최한 미디어 론칭 이벤트인 ‘팬 아메리카 어드벤처 캠프’는 지난 6월 22일부터 23일까지 1박 2일간의 일정으로 인천 영종도 일대에서 진행됐다. 모터사이클 전문 매체, 종합 일간지, 경제지, 유튜버까지 약 20명의 인원이 참가했으며 첫날은 온로드, 둘째 날은 오프로드에서 시승을 진행해 팬 아메리카의 성능을 다각도로 파악할 수 있었다. 


은은하게 남은 ‘할리 감성’
팬 아메리카는 효율과 성능을 추구한 어드벤처 투어러지만 할리데이비슨만의 감성을 완전히 배제하지는 않았다. 우선 디자인이다. 로드 글라이드의 샤크 노즈 페어링과 유사한 형태의 프런트 페어링은 할리데이비슨의 정체성이 묻어있다. 헤드라이트의 형태는 팻 밥의 것과 비슷하다. 스페셜 모델에는 헤드라이트와 윈드 스크린 사이에 추가 램프가 있는데, 조향 각도에 따라 조사각이 변경되는 어댑티브 헤드램프다. 안개등도 기본으로 장착했다.   

대부분의 구성품은 네모진 모양이다. 페어링과 헤드라이트는 물론, 너클 가드와 사이드 미러도 사각이다. 기존의 멀티퍼퍼스에서는 찾아볼 수 없던 모습이라 다소 생소하기는 하나 팬 아메리카만의 특색으로 다가온다. 연료 탱크는 21리터로 용량이 충분하나 폭이 상대적으로 슬림해 니 그립이 자연스럽다. 연료 탱크 측면에는 할리데이비슨 바 & 실드 로고가 새겨졌다.  

엔진의 조형미도 돋보인다. 이번에 첫 선을 보인 레볼루션 맥스 1250 엔진은 수랭식 DOHC 방식으로 작동한다. 따라서 냉각핀과 푸시 로드가 사라졌지만 엔진의 존재감까지 옅어지지는 않았다. 엔진 케이스는 경량 마그네슘 소재를 사용했다. 실버 톤으로 마감해 현대적인 느낌을 줄뿐만 아니라 경량화에도 성공했다. 실린더는 니켈 도금 처리한 알루미늄을 사용했고 실린더 헤드는 알루미늄 합금으로 제조했다. 엔진 부품 하나하나, 기존의 할리데이비슨과는 결이 다른 구성이다. 


레볼루션 맥스, 시동을 걸다 
역시 가장 궁금했던 부분은 엔진이다. 45도 협각의 V트윈 엔진은 할리데이비슨의 상징과도 같았다. 레볼루션 맥스 엔진도 마찬가지로 V트윈 배치를 취하긴 했지만 수랭, 숏스트로크 형식을 취했고 압축비도 13:1로 높았다. 최대 토크(13.1 kg*m)가 발휘되는 구간도 6,750rpm으로 경쟁 모델에 비해 높다. 중저속 영역에서 ‘우당탕탕!’ 쏟아져 나오는 토크가 가장 큰 매력이었던 할리데이비슨에서 150마력의 최고 출력을 발휘하는 고회전형 엔진을 만들다니, 수치만으로는 그 성격이 쉽게 파악되지 않는다.

레볼루션 맥스 엔진이 돌연변이 같은 엔진이라고는 하나 그 뿌리가 할리데이비슨인 만큼 중저속 영역에서의 풍부한 토크를 기대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예상은 보기 좋게 틀렸다. 레볼루션 맥스 엔진은 완전히 새로운 질감을 갖고 있다. 

2,000~5,000rpm에서 느껴지는 토크감이 상대적으로 적다. 1,252cc의 V트윈 엔진이 진가를 드러내는 영역은 6,000rpm을 넘어서면서부터다. 팬 아메리카는 가변 밸브 타이밍(VVT: Variable Valve Timing)을 적용해 고회전 영역에서 밸브 개폐 타이밍이 빨라진다. 따라서 고회전 영역으로 치달을수록 지치지 않고 쌩쌩하다. 라이딩 모드를 스포츠 모드로 세팅하면 엔진 브레이크 개입 정도가 증가하고 서스펜션 댐핑 값도 고속 주행에 맞게 변경돼 안정적으로 고속 투어링을 즐길 수 있다. 


오프로드에서 더 재밌다
첫날 시승은 온로드에서만 진행됐기에 팬 아메리카에 대한 예단은 삼갔지만 분명 아쉬웠다. 디자인과 전자 장비는 합격점을 줄만 했지만 온로드에서의 토크는 다소 밋밋했다. 팬 아메리카만의 매력을 말하기도 어렵다. 이대로라면 뚜렷한 경쟁력을 내세우기 힘들어 보였고, 걱정과 우려는 현실이 되어가는 듯했다. 하지만 둘째 날 오프로드 시승에서 모든 생각은 180도 바뀌었다. 

을왕산 일대의 오프로드 코스로 이동했다. 코스는 돌밭, 모래밭, 경사로, 업힐과 다운힐, 도강, 구불구불한 오솔길 등 여러 형태로 구성했다. 다양한 조건에서 팬 아메리카의 오프로드 성능을 테스트해볼 수 있는 기회다. 

온로드에서 2% 아쉬웠던 토크 특성은 오프로드에서는 장점으로 변모한다. 중저속에서 과도하게 토크가 뿜어져 나오면 라이더에 따라 버거울 수 있다. 결국 스로틀 워크가 중요한데 스로틀 그립 조작이 미숙할 경우 몸도 경직되고 시선처리는 뒤엉킨다. 따라서 마찰력이 적은 오프로드에서는 트랙션 확보와 밸런스 유지가 가능한 적당한 토크가 유리하다. 팬 아메리카의 특성이 그랬다. 라이딩 모드를 오프로드 모드로 설정하면 감당하기 쉬운 정도의 토크가 발휘된다. 그 감각이 정직해서 오프로드에서 가지고 놀기 좋다. ABS와 TCS는 터치스크린을 통해 비활성화 할 수 있기 때문에 다양한 노면 상황에 대응하기 좋다.  

1단 기어비를 늘려 놓은 것도 신의 한수다. 팬 아메리카는 1단 기어의 커버리지가 상당하다. 2,000~8,000rpm까지 회전 영역을 골고루 사용하면 50km/h까지 넉넉하게 속도를 높일 수 있다. 이는 1단의 기어비를 가장 널찍하게 세팅한 것과 더불어 고회전 영역까지 활기차게 도는 레볼루션 엔진 덕분이다. 1단으로 단수를 고정해도 웬만한 험로를 모두 통과할 수 있었다. 잦은 변속에 따른 번거로움도 없었고 동력을 꺼트릴 염려도 적었다. 오프로드 모드로 두면 엔진 브레이크가 걸리는 감각이 부드러워서 브레이크 조작에 대한 부담도 덜했다. 


ARH라는 마법
오프로드에서의 발 착지성은 온로드보다 중요하다. 시트고가 높으면 높을수록 라이더가 감당해야 하는 체감 무게는 늘어난다. 오프로드는 마찰력이 적고 노면도 불균형 하기 때문에 낮은 시트고는 상당한 이점이다. 정차 시에도 안정적이며 자칫 중심을 잃었을 때도 전도를 방지할 수 있다.

따라서 팬 아메리카의 ARH(Adaptive Ride Height, 스페셜 모델 한정)는 온로드보다 오프로드에서 유용하다. ARH는 최저 지상고와 서스펜션 트래블에 영향을 주지 않고 시트고를 자동으로 낮춰준다. 쇼와(SHOWA)가 개발한 세미 액티브 서스펜션을 통해 작동하는데 최대 43mm의 작동 폭을 지원하며, 최저 807mm(82kg 라이더 탑승 기준)까지 시트고가 낮아진다. 터치 계기반을 통해 하강 시점을 조정할 수 있으며 비활성화 시킬 수도 있다. 

슬림한 시트 폭과 가벼운 무게도 오프로드를 즐겁게 만든다. 스페셜 모델의 건조 중량은 242kg으로 가벼운 편이다. 연료 탱크 폭이 슬림해서인지 두 다리 사이로 느껴지는 무게도 적게 느껴진다. 오프로드에서 이렇게 안심되는 시트고와 무게의 리터급 멀티퍼퍼스가 있었을까. 곰곰히 기억을 되짚어봐도 떠오르지 않는다. 


리터급 멀티퍼퍼스의 문턱을 낮추다
팬 아메리카의 다루기 쉬운 특성은 기존 할리데이비슨 라이더를 위한 배려이기도 하다. 팬 아메리카는 어드벤처를 꿈꾸는 라이더는 물론 시트고가 낮은 크루저에 익숙한 할리데이비슨 오너들도 쉽게 접근할 수 있어야 했다. 따라서 팬아메리카는 쉽다. 리터급 멀티퍼퍼스의 문턱을 낮춰 누구나 오프로드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게 만들었다. 기존 리터급 멀티퍼퍼스가 버거웠던 라이더에게도 팬아메리카는 좋은 대안이 될 것이다. ARH는 심리적 안정감은 물론 물리적 안정감도 함께 제공한다. 다루기 쉬운 토크와 뛰어난 밸런스는 오프로드를 쉽게 만든다. 

오프로드 시승까지 마치고 나니 종잡을 수 없었던 팬 아메리카의 성향이 점점 명확해진다. 할리데이비슨은 누구나 오프로드를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멀티퍼퍼스를 만들었다. 오프로드에서의 안정감과 다루기 쉬운 특성은 경쟁 기종보다 우위를 점할 만하다. 그리고 그 전략은 충분히 유효해 보인다.  



김남구 기자 southjade@bikerslab.com 
사진
김성원 포토그래퍼 (할리데이비슨 코리아 제공)

제공
바이커즈랩(www.bikersla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