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카티의 빨간 마법, 2022 두카티 파니갈레 V4 S 시승기

0
377

 우리 같은 보통 사람들이 두카티를 말한다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무엇일까? 아마도 빨간색, 그리고 스포츠 바이크가 떠오를 거다. 정확히 말하면 레이서 레플리카 카테고리인데, 이 분야에서 두카티는 항상 최신 기술을 우선 접목하며 대중에게 첨단 스포츠 바이크 기술의 향연을 선사하고 있다. 최고의 디자인과 최고의 기술, 그 두 가지 포인트의 연결로 프리미엄 스포츠 바이크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아이콘이 됐다.

두카티는 전통적인 L 2기통 엔진에서 V 4기통 엔진 라인업으로 갈아타는 과도기를 지나고 있다. 현재는 미들웨이트 클래스 모델과 스크램블러 시리즈에 L 트윈 엔진을 적용해 파니갈레 V2, 멀티스트라다 V2, 슈퍼스포트 950 등 토크 위주의 부드럽고 다루기 쉬운 콘셉트의 바이크로 빅 트윈 바이크 특유의 감성을 유지하고 있다. 프리미엄 라인업이라 할 수 있는 파니갈레 V4나 멀티스트라다 V4, 스트리트파이터 V4 같이 고사양 모델만이 V4 엔진을 사용하고 있다.

V4엔진의 콘셉트는 기존 L트윈의 기민한 운동성과 4기통만이 낼 수 있는 고출력을 믹스하겠다는 것이다. 파니갈레 V4는 그 선두에 서서 두카티가 가진 현재의 기술력을 최대한 밀어넣어 과시하고 있는 기함이다. 이번에 시승한 2022년형 파니갈레 V4 S는 수년 전 말레이시아 세팡 서킷에서 타 본 1세대 파니갈레 V4 S이후 오랜만의 경험이다. 시승은 영암 인터내셔널 서킷에서 4세션에 걸쳐 기회가 주어졌다.

바이크 앞에 서면, 일단은 L트윈 엔진 기반의 파니갈레 V2와는 전혀 다른 묵직한 느낌이 압도한다. 레이서 레플리카 장르에 흔히 쓰는 병렬 4기통 엔진 레이아웃의 두께감과 날렵한 파니갈레 V2와의 중간 정도되는 부피감은 시트에 앉자마자 곧바로 느껴진다. 양 허벅지 사이로 느껴지는 1,103cc 배기량의 V 4기통 엔진의 부들부들한 떨림과 열기가 점차 긴장감을 높여 온다. 시트는 앉자마자 바로 느낄 수 있을만큼 차량과의 일체감이 아주 좋다. 엉덩이를 단단하게 붙잡는 이 시트는 높은 속도에서도 코너에 앞서 정확하게 전후좌우로 움직여야 하는 라이더 입장에서 굉장히 중요하다. 핸들바는 일제 레이서 레플리카에 비하면 양쪽으로 각도가 약간 더 벌어져 컨트롤하기 편한 쪽을 선택했다. 높이 위치한 풋페그를 비롯한 연료탱크 및 하체와 맞닿는 파츠들의 일체감도 오버리터급 4기통 바이크라는 사실에 비하면 우수한 편이다.

우선은 본격적인 주행 테스트에 앞서 라이딩 모드(레인, 스트리트, 스포츠, 레이스A, 레이스B) 중에서 비교적 여유있는 세팅의 스트리트와 레인 모드를 한번 경험해 보기로 했다. 스트리트 모드는 파니갈레 V2와의 출력 세팅과도 비슷하지만 전반적으로 토크가 충분하다. 출발부터 일반적인 도로용 바이크처럼 부드럽고, 5000rpm이상이 되어야 본격적인 파워가 나온다. 고회전에서는 가볍게 치고 나가지만 회전수를 높여야 스포티하게 즐길 수 있는 출력이 나온다. 이름 그대로 일반 도로에서 막히는 구간은 부드럽고 스트레스없이 속도를 유지하고, 원할 때는 고회전을 이용해 가볍게 가속력을 내는 세팅이다. 

레인 모드는 우천 시 트랙션컨트롤이나 ABS 개입레벨을 최대로 돌리고 안전하게 이동하고 싶을 때 쓰는 것이 좋다. 출력이 전반적으로 떨어지므로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추천하지 않는다. 다시 스트리트 모드를 놓고 페이스를 점차 올려보면 10,000rpm 근처에서 가장 경쾌하게 도는 엔진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양쪽에 커다란 윙렛을 단 이유는 분명하다. 속도를 높일수록 다운포스 영향을 받아 프론트 접지력이 묵직해지고 급가속 시에도 날개 위를 짓누르는 주행풍을 이용해 서스펜션을 꾹 눌러준다. 직선 구간에서 시속 200킬로미터를 넘길 때 안정감은 확실히 우수하다. 작정하고 스로틀을 완전히 끝까지 개방한 채 퀵 시프터를 이용해 툭툭 기어를 올려주면 엔진이 포효하며 무섭게 치고 나가지만 초기형 파니갈레 V4를 탔을 때 같은 섬뜩함이 확실히 줄어든 모습이다. 그만큼 안정감이 높아졌다는 이야기다.

또 하나 큰 차이점은 바로 고속 제동 상황에서 느껴졌다. 직선 구간을 마무리하고 U턴에 가까운 헤어핀 코너를 지나기 위해 시속 100킬로미터 이하로 단번에 속도를 줄여야 하는 코스에서 영향이 크다. 세밀함이 떨어지는 아마추어 실력의 풀 브레이킹인데도 프론트의 접지감이 뚜렷이 전해져 오고, 리어가 슬슬 좌우로 요동치는 상태에서도 프론트 타이어의 접지력만은 분명해서 겁이 나지 않는다. 속도를 줄이는 작업 자체에도 큰 퀄리티의 향상이 있었다. 상대적으로 리어는 더 가볍게 느껴지긴 했지만 제동거리는 확실히 줄어들었다. 그런 안심감 속에서 코너에 진입하니 라인이 정확해지고 탈출 가속도 한 템포 정도 미리 준비할 수 있게 됐다. 프로 레이서가 탄다면 이 차이점을 더 명확히 느낄 게 분명했다.

이제 적응이 됐으니 스포츠 모드로 변경하고 달리기 시작했다. 스로틀 반응은 훨씬 직관적이고 제어 가능한 범주에서 엔진은 예민하게 움직인다. 5000~8000rpm 정도의 중간 영역대의 토크가 상당히 통쾌하고 이 범위 내에서 코너에 진입하면 나올 때 적극적으로 스로틀을 열며 트랙션을 얻을 수 있다. 고회전으로 갈 때 전방으로 빨려들어가듯 출력이 높아지는 것은 여느 4기통 엔진 특성과 비슷하다. 병렬 4기통 대비 다른 점은, 전자제어 스로틀을 사용하면서도 아날로그적인 엔진 회전 감각이 잘 살아있다는 점이다. 일반 병렬 4기통 엔진을 고회전으로 돌리면 출력은 확실히 높아지지만 빨리 돌수록 오히려 회전하는 감각보다는 잔진동이 거세지고 미끄러지듯 가속하는 느낌이라면, V4엔진은 잘개 쪼개진 한 박 한 박을 느끼며 가속하는 느낌이라 제대로 달리고 있다는 생동감이 크다. 이는 라이더가 고회전 영역에서 무아지경에 들기 보다도 감각적으로 트랙션을 완급 조절하기가 좋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충분히 만족스러운 스포츠 모드였지만 레이스 모드도 경험해봐야 했다. 아마도 과민할 것이라 생각하고 과감하게 페이스를 이어 트랙을 한 바퀴, 두 바퀴 돌아보니 내 생각이 꽤 빗나갔음을 알 수 있었다. 지나치게 팽팽한 감각, 이를테면 120퍼센트의 민감도로 예상했다면 사실 레이스모드는 100%를 정확히 맞춰놓은 세팅이었다. 스트리트 기반 바이크라면 당연히 있어야 할 스로틀 초반의 적당한 유격이 거의 없어지고, 코너웍 중에서 약간의 스로틀 움직임을 그대로 뒤 타이어로 전달하는 느낌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특히 그것이 저회전이던, 고회전이던 관계없이 달리고 있는 라이더의 의지를 100퍼센트 그대로 반영해서 마치 생각을 읽는 것처럼 움직여준다. 완전히 모든 전자제어 컨트롤을 끈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안전마진도 확보할 수 있다. 그렇게 감명 받은 상태로 4번의 세션을 모두 달리고도 조금 더 타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트랙 라이딩을 하면서 이 정도의 유기적인 소통을 할 수 있던 바이크는 거의 없었다.

스트리트파이터 V4에 비하면 핸들링 초기의 움직임이 오히려 약간 뭉뚝하다고 할만큼 부드럽게 느껴졌다. 훌쩍 훌쩍 좌 우로 넘어가며 적극적으로 방향을 틀던 스트리트파이터 V4와는 다른 성격인 것이다. 이 점이 오히려 고속에서 긴 뱅킹 시간을 유지할 때 안정감으로 바뀌었다. 자세가 낮긴 하지만 세퍼레이트 핸들 바의 각도가 평평한 편이라 파이프 핸들 바 못지 않게 조작이 간편하고, 브레이킹 시 쏟아지는 하중을 나눠 갖기도 편리했다.
 
초기형 파니갈레 V4와 이번 신형 모델에서 여전히 좋다고 느낀 것은 브레이킹 감각의 정밀함이다. 이쯤 되는 스포츠 머신이라면, 제동 측면에서 강력한 것은 당연한 것이고, 브레이킹의 기능은 제동을 넘어 감속력의 제어 측면에서도 완벽한 컨트롤을 제공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파니갈레 V4는 최고의 컨트롤을 제공했다. 여기에는 물론 피렐리 수퍼코르사 SP 타이어의 무지막지한 접지력이 받침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아무튼 이 브레이크 시스템, 특히 마스터실린더가 관장하는 브레이크 레버를 통해 프론트 접지력을 조절하는 것, 원하는 만큼 정확히 되었을 때의 쾌감은 퓨어 스포츠가 추구하는 정점에 가깝다. 말하자면 감동적이었다.

역회전 크랭크 샤프트는 다소 두툼해진 차체를 저항감없이 기울이고, 원하는 시간동안 유지하고, 천천히 세워가며 가속하는 모든 과정을, 보다 자주적으로’ ‘능동적으로처리할 수 있게 한다. 크랭크 샤프트의 회전 관성에서 오는 저항이 생략되다시피 하면서 얻는 이점은 이미 구형 버전에서 충분히 느꼈던 부분이다. 이 설계 덕분에 V4인데도 마치 L트윈의 움직임처럼 느껴지게 하는 것이다.

4세션을 내리 달렸지만 솔직히 체력만 더 허락했다면 계속해서 새로운 영역을 탐구하고 싶을 만큼 매력적인 패키지의 머신이다. 탐스러운 중간영역대의 엔진 회전 토크하며, 고회전에서 혼이 쏙 빠져나갈만큼의 가속, 브레이킹 작업에서의 세밀함, 한 체급 아래의 L트윈 머신처럼 툭 쓰러지는 차체나도 모르는 사이에 순수한 모터 스포츠의 세계를 탐닉하게 된 것이다.
 
파니갈레 V4 S 2022년형 역시 모든 면에서 환상적이지만, 뒤에 숨어 있는 가격표가 그 대가를 고스란히 숫자로 표현해 준다. 4,690만 원. 파니갈레가 전시된 매장에서 가격표를 보고 실소를 감출 수 없었던 나는, 레이스 트랙에서 고작 하루 즐겼을 뿐인데 이미 모든 걸 수긍하고 있었다.


임성진 기자
사진 두카티코리아(신동환, 안동철 포토그래퍼)
제공 바이커즈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