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루저(Cruiser). 국립국어원에 따르면 ‘먼 바다까지 항해할 수 있는 대형 요트’라는 뜻을 갖고 있다. 군사적으로는 ‘항속력이 크고 고속이며, 구축함대를 지휘하는 기함’을 크루저라 불렀다. 포털의 백과사전을 찾아보면 이제야 모터사이클이라는 단어가 등장한다. 크루저의 기원은 선박이었지만 점차 자동차로, 모터사이클로 확대됐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선박 분야에서는 크루저에 ‘대형’, ‘기함’이라는 의미를 내포시켰다. 그래서 모터사이클 장르에서도 ‘장거리 여행에 적합한 대형 기종’을 크루저라고 해석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리터급’에 이르러서야 크루저가 즐비한 까닭은 당연한 이치다. 미들급 혹은 쿼터급 크루저가 낯설게 여겨지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하지만 ‘리터급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크루저가 대중의 요구에 따라 변화하고 있다. 몸집을 감량하고 문턱을 낮춘 기종들이 등장하고 있는 것. 미들급 크루저 혼다 레블500와 쿼터급 크루저 KR모터스 아퀼라 GV300S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전통적인 크루저라 함은 오버 리터급의 넉넉한 배기량을 토대로 한 여유로운 주행 질감, 긴 휠 베이스, 낮은 시트고, 편안한 포지션, 우람한 차체 등을 떠올릴 수 있다. 레블과 미라쥬는 상당 부분 전통을 받아들이는 한편, ‘엔트리 크루저’라는 척박한 장르를 개척해 나가기 위해 고유의 특성과 개성을 부여했다.
레블 500, 혼다가 제시하는 캐주얼 크루저
오랜 기다림이었다. 레블 시리즈가 처음 등장한 시기는 2017년으로 북미 시장에서는 그 해 4월부터 판매를 시작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올 해 3월에 출시했으므로 약 3년만의 일이다. 개발 당시 레블은 Simple & Raw라는 콘셉트를 내세웠다. 가공되지 않은 단순함을 무기로 삼은 것이다. 덕분에 북미 시장에서 커스텀 베이스 기종으로 큰 인기를 끌었다. 커스텀 문화가 어느 장르보다 활발한 크루저 시장에 대한 문화를 이해하고 반영한 것은 현명한 대처였다.
국내에서도 이런 콘셉트는 유지되고 있다. ‘Express Yourself’라는 슬로건을 전면에 내걸며 젊은 라이더를 유혹하고 있다. 단순한 이동 수단을 넘어 자신의 개성을 표출할 수 있는 라이프스타일 아이템으로 레블을 제시한 것이다.
이에 따라 혼다 코리아는 다양한 스타일의 커스텀 파츠를 선보였다. 시트, 탠덤 시트, 리어 랙, 새들 백, 연료 탱크 패드, 윈드 스크린, 핸들 바, 각종 커스텀 부품 등 본사 홈페이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파츠만 30여가지가 넘는다. 정품 파츠는 물론 다양한 사외품까지 이용할 수 있어 선택의 폭이 넓고 가격도 합리적이다. 나만의 모터사이클을 만들어가는 과정은 모터사이클을 즐기는 또 하나의 재미다. 레블 500이라면 충분히 그 즐거움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또 한가지 흥미로운 부분은 엔진이다. 레블 500은 471cc 수랭식 병렬 2기통 엔진을 탑재했는데 최대 토크(4.4kg*m)가 발생하는 구간을 6,000rpm으로 설정했다. 일반적인 크루저가 3,000~4,000rpm영역에서 최대 토크를 발휘하는 것과는 확연한 차이가 있다. 최고 출력이 발휘되는 시점도 8,500rpm으로 크루저 보다는 네이키드 모터사이클에 가까운 세팅이다. 보어와 스트로크의 크기는 67mmX66.8mm로 비율이 1:1에 가깝다. 이로 인해 기대할 수 있는 부분은 스포티함이다. 고회전영역으로 몰아붙일수록 점점 강력한 출력을 쏟아내니 스포티한 주행 질감을 만끽할 수 있다.
이 밖에도 레블은 ABS를 기본으로 탑재했고 어시스트 슬리퍼 클러치의 적용으로 클러치 조작감을 부드럽게 했다. 원형의 LCD 계기반은 주행에 필수적인 정보만 간략하게 표시한다. 서스펜션은 앞 뒤에 각각 41mm 포크와 더블쇽업소버를 적용했고 브레이크는 앞 뒤 모두 싱글디스크를 장착했다. 가격은 개별소비세 인하가 적용되며 831만원까지 내려갔다.
아퀼라 GV300S, 국산 크루저의 희망
‘아퀼라’라는 기종명은 익숙치 않아도 미라쥬를 처음 듣는 라이더는 드물 것이다. 2000년대 중반부터 지금까지 대다수의 운전 면허 시험장이 미라쥬 시리즈를 시험 차량으로 운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미라쥬의 바통을 이어 받은 기종이 바로 아퀼라다.
국산 브랜드의 출시 동향을 살펴보면 대림오토바이는 스쿠터를 제외한 125cc 이상의 기종을 출시하지 않고 있고, KR모터스가 미라쥬 시리즈(250DR, 650PRO)만을 출시하며 간신히 국산 대배기량 모터사이클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KR모터스의 크루저 라인업은 ‘국내 최초이자 유일한 대배기량 모터사이클’이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으며 지금도 이 기록은 유효하다. 현재로서 미라쥬와 아퀼라 시리즈가 국산 모터사이클의 마지막 희망이라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미라쥬 시리즈는 20년이 넘는 역사를 갖고 있다. 첫 번째 기종인 GV미라쥬 125를 2000년에 출시했으며 곧이어 배기량을 키운 미라쥬 250을 선보였다. 2005년에는 미라쥬 650을 출시하며 지속적으로 미라쥬 시리즈를 발전시켰다. 이후 아퀼라 125가 2018년에 개발됐고 올해에는 마침내 쿼터급 크루저인 아퀼라 GV300S가 출시됐다. GV300S는 중국에서 먼저 판매를 시작했고 이후 유럽과 태국 등과 수출 계약을 맺었다. 해외 시장의 잇따른 러브콜에 탄력을 받고 국내에도 지난 3월 말에 출시했으며, 1차 물량은 출시와 동시에 모두 계약됐다.
쿼터급 크루저에 해당하는 아퀼라 GV300S는 도심형 크루저를 지향했다. 296cc 배기량의 수랭식 V트윈 엔진을 탑재해 30마력의 최고 출력과 2.61kg*m의 최대 토크 성능을 발휘한다. 레블 500과 비교하면, 차량 중량은 169.5kg으로 20kg가량 가볍고, 휠 베이스는 1,428mm로 60mm가량 짧기 때문에 도심에서 민첩한 주행이 가능하다.
미라쥬 시리즈에서 아퀼라로 넘어오며 생긴 변화는 젊어진 디자인이다. 프레임의 크기를 줄이고 차체의 부피를 응축하며 트레일을 짧게 설정해 스포티한 주행 성능을 확보했다. 리어 펜더도 말끔하게 정리해 깔끔해진 인상이다. 색상은 유광 블랙에서 무광 블랙으로 변경했다. 프론트와 리어 모두 싱글 디스크 브레이크 방식을 채택했으며 ABS 역시 탑재했다. 12v USB단자를 마련해 편의성을 확보했고 2인승 시트를 장착해 탠덤 라이딩도 가능하다. 계기반은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혼합한 방식으로 회전계는 아날로그로, 속도계는 디지털로 표시한다. 가격은 499만원이다.
레블과 미라쥬의 출시를 반기는 반응을 온라인에서 종종 접할 수 있다. 그 동안 크루저 기종들이 리터급에 치중되며 진입 장벽이 높았기 때문으로도 해석이 가능하다. 또한 크루저는 무거운 무게로 다루기 힘든 모터사이클이라는 인식도 존재했다. 레블과 미라쥬는 ‘미들급 & 쿼터급 크루저’라는 척박한 분야를 개척하기 위해 다루기 쉬운 차체, 스포티한 특성 등을 부각시켰다. 전형적인 크루저의 모습에서는 한 발짝 빗겨 선 포지션이지만 이들만의 매력은 확고해 보인다.
글
김남구 기자 southjade@bikersla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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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커즈랩(www.bikerslab.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