래퍼 정쌍, 자유와 현재 그리고 모터사이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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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모플라쥬 패턴의 재킷에 파란색 헬멧 안으로 짙은 선글라스를 착용하고 나타난 그는, 흔히 말하는 요즘의 곱디고운 남자와는 다른 ‘상남자’의 냄새를 풍긴다. 상남자가 풍기는 클래식 스타일과 그가 타고 온 CB400SS 역시 대세와는 사뭇 다르다. 반대로 그는 요즘 대세인 힙합음악을 하는 래퍼다. 래퍼와 모터사이클, 어찌 보면 쉽게 매치 되지 않지만, 유난히 절묘하게 잘 어울리는 이유는 바로 좋아하는 것을 충실히 즐기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일에 열정과 최선을 다하지만 매사에 즐겁게 사는 것을 가장 우선시 하고, 모터사이클로 몸과 마음의 환기를 시킨다는 그에게 여유와 자신감이 묻어난다.


혼다의 매력에 빠진 래퍼

듬직하고 남자다운 모습 때문인지 왠지 모르게 앞 바퀴를 멀찌감치 쭉 빼고 달리는 차퍼가 어울릴 것 같았지만 상남자의 외모에서 나오는 웃음은 어렸다. 수줍은 미소에서 알아차렸어야 했을까. 그의 모터사이클 라이프는 정 반대다. “올드 모터사이클이나 실용적인 스쿠터, 아니면 작고 귀여운 모터사이클을 좋아해요. 어렸을 때 시골에 살았는데, 시골은 어디를 가려면 거리가 멀어서 자전거를 타고 다녀야 했어요. 그러다가 중학생 때 아버지의 모터사이클에 잠시 타 본 적이 있는데, 고등학생 때 면허를 취득하고 타고 다니기 시작한 것 같아요. 그리고 대학생이 되고 나서 35만원을 주고 처음으로 제 스쿠터를 구매했어요. 효성의 슈퍼캡이었어요.”

잘 알지 못하던 시절에 구매한 중고 모터사이클은 대부분 말썽이다. 그 역시 1년 남짓 타고 다니다가 결국 서스펜션이 주저 앉았고, 견적이 많이 나온다는 동네 수리점 사장의 말을 듣고 10만원을 받고 팔게 됐다. “그 후 군대를 갔는데, 서울에서 의경으로 복무했어요. 그 때 길거리에 지나가는 모터사이클을 보면서 전역 후에 다시 사야겠다는 마음을 먹었죠. 결국 전역 후에 제가 갖고 있던 130만원으로 벤리 50S를 샀어요.” 이후 그가 타왔던 모터사이클은 줌머, 마제스티, PCX, 마그마, 모트라, RX125, CB400SS 등이다. 대부분이 미들급 이하의 배기량에 쉽고 편하게 타고 다닐 수 있는 기종들이다. 현재 타고 있는 CB400SS는 클래식한 스타일에 단기통 엔진이 매력이라고 한다. 또한 유독 혼다를 좋아한다고.

“혼다를 가장 좋아해요.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취향이나 스타일 등 제가 생각하던 ‘타고 싶은 모터사이클’을 유독 혼다에서 많이 만들어내요. 그 중에서도 클래식 스타일을 좋아해요. CB750 four는 언젠가는 꼭 갖고 싶은 모터사이클이에요. 제가 상상하던 이상적인 클래식 모터사이클이에요. 그리고 혼다는 고장도 잘 나지 않고 내구성도 좋고 어디를 가도 정비를 받기 수월하잖아요.”

본인이 소유했던 모터사이클 중에서도 혼다의 모트라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한다. 대부분 생활 반경 내에서 모터사이클을 타는 그는 비교적 작은 차체의 모터사이클을 즐겨 탄다. 모트라 역시 50cc 밖에 되지 않는 배기량이지만 작고 아담한 디자인이 마음에 들었고, 별도의 오프로드 기어가 있어서 임도에서도 재미있게 탔었다고.

또한 그는 혼다의 FTR223을 타고 ‘흙먼지 레이스’에 출전하기도 했다. 오래 전, 흙 밭에서 모터사이클을 타고 놀았던 기억이 있는데, 아스팔트에서 라이딩 하는 것과는 색다른 재미를 느껴서 참가하게 됐다고 한다. 역시나 평소에 타던 생활형 모터사이클로도 레이스를 할 수 있다는 것도 좋은 점이다.


힙합 속의 모터사이클

모터사이클 이야기에 심취해 이야기를 나눴지만 그는 래퍼다. 대학생 때 힙합 동아리를 시작으로2002년부터 랩을 하고 공연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2008년 넥턴(nekton)이라는 그룹으로 데뷔해 현재까지 자신의 음악적 컬러를 여지없이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역시 래퍼이자 라이더. 모터사이클을 주제로 작년에 발매한 ‘꽂아’라는 곡은 아주 화끈하면서도 자신의 모터사이클 라이프를 음악에 자연스럽게 녹여냈다. 이런 스타일의 힙합음악은 국내에서 정쌍이 유일하다.



사진출처 : www.505culture.com

“해외 뮤지션 중에는 DMX가 뮤직비디오에 모터사이클을 많이 등장시켰어요. 저 역시 모터사이클을 좋아하기 때문에 만들고 싶었죠. 국내에서는 이런 시도를 한 힙합음악이 없었고요. 사실 ‘꽂아’ 이전에도 모터사이클을 주제로 ‘블랙 휠즈(black wheelz)’ 라는 곡을 발표했어요. ‘블랙 휠즈’라는 곡을 만들 당시에는 주변에 모터사이클을 타는 친한 래퍼들과 같이 작업했는데, 역시 취미가 같다 보니 마음도 잘 맞고 곡도 재미있게 잘 나왔어요. ‘꽂아’ 역시 마찬가지인데, 그때와 다른 점은 동호회 활동도 하면서 조금 더 적극적으로 모터사이클을 타고 새로운 사람들을 더 많이 만나게 된 것 같아요. 뮤직비디오 역시 지인을 통해 알게 된 모토리큐르(Moto Liqueur)라는 커스텀 개러지에서 촬영을 했어요. 제가 담고 싶었던 약간은 정리 되지 않은 ‘날 것’ 그대로의 느낌이 잘 살아 있었고 제 모터사이클과도 잘 어울렸거든요.”



사진출처 : www.505culture.com

‘꽂아’ 외에도 그는 자신의 자동차인 갤로퍼를 주제로 만든 곡이 있다. 자신의 삶을 그대로 담아내는 힙합답게, 정쌍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과 취향을 솔직하게 그리고 맛깔스럽게 곡으로 풀어냈다. 곡과 뮤직비디오를 감상해보면 알 것이다. 또한 래퍼 이외에도 ‘505culture’라는 독자적인 브랜드로 뮤직비디오 디렉터 및 포토그래퍼로도 활동하고 있다. ‘꽂아’, ‘갤로퍼’, ‘F.Y.V.M’ 등의 뮤직비디오는 모두 그의 손에서 탄생한 작품이며, 아트웍 등에도 그만의 스타일이 담겨있다. 그의 음악이 ‘정쌍’다운 이유다.



사진출처 : www.505culture.com

래퍼의 힐링타임

뮤직비디오에서도 알 수 있듯 그의 모터사이클 라이프는 바람을 맞으며 유유자적 달리는 힐링이다. 고속으로 달리며 스릴을 즐기기 보다는 마음 맞는 사람끼리 근교로 투어를 다니거나 서울 시내라도 지인들과 커피 한잔 마시며 담소를 나누는, 온전히 생활 속 모터사이클로 자리잡은 것이다. “주로 강화도 쪽이나 철원의 노동당사 등으로 투어를 다니긴 하지만, 장거리 투어를 많이 다니지는 않아요. 꼭 어느 곳을 가고 얼만큼의 거리를 다녀왔는지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 편이죠. 서울에서 라이딩을 하더라도 즐거워요. 사로, 헤드락, 오뉴월츄러스, 친구네허준, 에캄 등의 카페에 주로 가는데, 주변 라이더들과 차 한잔 마시며 이야기 나누는걸 좋아해요.”



사진출처 : www.505culture.com

그의 삶이 왠지 여유로워 보인다. 하지만 그도 한 때는 성공과 목표에만 매달려 쳇바퀴 돌듯 하루하루를 보냈던 적이 있다고 한다. 음악으로 큰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삶의 즐거움과 진정한 행복을 보지 못했었다. 이런 생활로 쌓여가는 스트레스 때문에도 모터사이클을 많이 탔었다는 그는 자신의 삶에 있어 라이딩이 힐링의 근원이라고 한다. “라이딩을 할 때만큼은 온전히 나만의 시간이잖아요. 저는 라이딩 할 때 음악을 안 들어요. 엔진 소리와 바람 소리를 느끼면서 아무 생각 없이 달리다 보면 가사가 떠오를 때도 있고, 그러면 잠시 멈춰 메모를 하고 다시 출발하죠. 사회인은, 더군다나 결혼을 한 남자들은 혼자만의 시간을 갖기가 힘들잖아요. 그래서 라이딩을 하고 나면 단순히 기분이 좋은 것을 넘어 정말 제대로 힐링을 한 느낌이에요. 복잡했던 생각이 정리되면서 묵혀뒀던 것들이 바람에 싹 씻겨나간 듯 개운해요.”

그는 모터사이클은 바람의 촉감과 냄새 등을 느낄 수 있는 감성적인 탈 것이며 자동차를 탈 때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쾌감이 있다고 말한다. 그가 이야기하는 모터사이클과 음악(힙합)인으로서의 삶을 조금이나마 들여다보니 안 어울릴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둘 다 자유롭다는 것 아닐까요. 약간은 마초적인 면도 그렇고. 힙합은 본인의 삶 속에서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이나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음악이에요. 그 자유로움 안에서 본인(뮤지션)만의 색깔이 드러나게 되고요. 모터사이클도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역시 ‘자유’인 것 같아요. 달리는 의미에서도 그렇고 커스텀 모터사이클 역시 자기만의 개성을 만들어가는 것이니까요.”



사진출처 : www.505culture.com

더불어 안전운전을 강조했다. 힙합음악도 마찬가지지만 모터사이클 역시 아직은 우리나라에서 그리 곱지만은 않은 시선이 많다며, 자신과 타인의 안전을 위해서 그리고 긍정적인 인식으로 바뀌기 위해서라도 법규를 지키고 안전운전을 해야 한다고. 래퍼이자 뮤직비디오 디렉터이자 라이더인 정쌍. 삶의 목표에 대해 누군가에게 물었을 때 아주 신중하게 고민하여 답하는 사람이 많겠지만, 그는 무심한 듯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답했다. “저는 ‘즐겁게’가 우선이에요. 제가 할 수 있는 음악, 영상, 사진 등 모두 꾸준히 할거에요. 그러나 이것들로 성공해서 유명해지고 싶은 마음은 나중 문제예요. 목표가 있는 것은 중요하지만,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한 과정이 중요하고 그 과정에 충실한 하루하루가 즐거워야 한다고 생각해요.”



조의상 기자 us@bikersla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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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커즈랩(www.bikerslab.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