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R모터스 에이온125, 혼혈 스프린터의 토착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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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배기량 스쿠터가 도심에 최적화된 이동수단이라는 것에 대해 이견을 제시할 사람은 많지 않다. 발 빠른 기동성을 앞세워 승용과 상용 등 다방면으로 아낌 없이 사용되며, 고급스러움도 더해져 이제는 단순히 저렴한 이동수단이 아니다. 지금의 125cc 스쿠터 시장은, 물론 각기 다른 스타일의 수요도 있지만, 올라운드 플레이어를 지향하는 기종들의 인기가 높다. 이를테면 혼다의 PCX나 야마하의 엔맥스 등이 그렇다. 간단히 이 둘을 예로 들면, 도심에서 부담이 없으면서도 비교적 넉넉한 차체를 갖추고 첨단 장비로 무장하여 만능형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이런 와중에 KR모터스가 내놓은 에이온125(AEON 125 이하, 에이온)는 지향점이 다르다. 저배기량스쿠터의 최대 장점인 기동성을 중심으로 스포티함을 강조한 스프린터 스쿠터다. 해당 장르는 과거만큼 인기가 있는 타입은 아니지만, 아직까지 이런 스타일을 찾는 라이더도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에 소비자 입장에서는 반가울 따름이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에이온은 긍정적이던 부정적이던 지금 꽤나 핫 한 기종 중 하나다.


한국인은 큰 것을 좋아해

전장 1875mm의 에이온은 스프린터 스쿠터치고는 작지 않다. 경쟁 모델과 비교해 조금 긴 편이며 폭도 좁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날렵한 디자인 덕분에 몸매가 매끈하며 스포티함이 돋보인다. 아스팔트로 내리꽂듯 뾰족하게 뽑아낸 프론트와 위로 추켜 올린 리어 라인은 스포츠 성향을 지향하는 스쿠터들이 자주 애용하는 스타일로, 작은 차체 안에서 역동성을 표현하기에 좋은 방법이다.

색상은 블랙, 블루, 화이트의 총 세 가지 컬러이며, 블루 컬러는 적당한 농도로 촌스럽지 않게 에이온의 성격을 부각시켜준다. 시트에 앉아보면 스프린터라기 보다는 평범한 125cc 스쿠터에 가깝다. 이전의 스프린터와 달리 조금 커진 차체는 시대 흐름에 부응하는 변화다. 소비자들의 체형이 달라지고 요구하는 것들이 늘어나는 만큼, 물건과 재화도 이에 부합하도록 변형시키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차체가 커졌다고 해서 이전의 스프린터가 갖는 민첩함이 없을 것이라는 판단은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다.

물론 이전의 스프린터에 비해 커졌다는 이야기일 뿐, 여전히 부담 없는 크기다. 오히려 딱 맞는 혹은 꽉 끼는 느낌이 없어 여유가 있고, 여유가 있으니 조작이 한결 수월하다. 좁은 골목과 빈틈을 요리조리 헤치고 나가는 과정에서 크기에 대한 불만은 없다. 넉넉해진 만큼 장시간의 주행에서 보다 편안함을 제공하며, 덩치가 큰 사람도 피로가 한결 덜할 것이다.

동일한 배기량에서 맥시 스쿠터의 차체를 표방하는 스쿠터와 달리 구성도 간단하다. 프론트의 왼쪽에는 연료 주유구가, 오른쪽에는 수납함과 USB포트가, 시트 밑에는 러기지 박스가 있다. 필요한 최소한의 것들만 배치돼있어 복잡하지 않고 단출해서 좋다. 반면 프론트에 마련된 USB포트와 수납공간은 소지품을 넣을 수 있어 좋지만, 공간 디자인이 다소 아쉽다. 이제는 휴대폰이라는 단어보다 스마트폰이라는 단어가 지배적으로 쓰일 만큼 열에 아홉이 스마트폰을 사용하며 크기 또한 상당히 커졌다. 네비게이션을 켜 놓고 배터리를 충전하면서 달리고 싶어도 애매한 크기의 공간 때문에 수납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 주행 중 요철을 만나 차체가 덜컹하면, 스마트폰이 퉁겨 나올까 덩달아 철렁한다. 음료수를 넣을 수 있는 홈은 있지만, 사실상 음료 캔을 넣을 일은 적다. 조금 더 세심함을 필요로 하는 부분이다.

이 밖에 계기반을 비롯한 핸들그립 및 스위치 등 곳곳에 드러나는 조작 부위의 마감은 준수하다. 핸들그립은 두 가지 컬러를 활용하고 고무에 패턴을 넣어, 동급 기종 대비 디자인과 고급스러움을 강조했다. 각종 플라스틱 부위도 깔끔하게 처리했다. 시트도 한국인 체형에 맞도록 설정했다. 운행 시 엉덩이 밀림이 적고 장시간 운행에도 배기지 않아 편안하지만, 불독의 턱 살처럼 늘어지는 가죽 질감은 아쉽다. 반면, 시트 밑의 러기지 박스는 공간을 최대한 확보해 실용적이다.


안정된 품 안에서 보여준 재치

사실, 스프린터의 성격은 단순히 차체 크기만이 아니라 민첩한 움직임이 수반되어야 한다. 에이온은 현 시대에 적합한 스포츠 타입으로 진화해 도심에서 재빠르면서도 여유 있게 달릴 수 있다. 주행질감도 가격이 아쉽지 않을 만큼 스프린터의 값어치를 톡톡히 해낸다. 시승 내내 답답함은 없었고 속도의 한계까지 달려가는 과정이 활기찼다. 124.8cc 배기량의 단기통 엔진은 12마력(8,500rpm)의 최고출력과 1.1kg*m(7,500rpm)의 최대토크를 발휘한다.

스로틀 그립을 끝까지 열면 30km/h 부근부터 6,500rpm 이상을 유지하며 쭉쭉 치고 나아간다. CVT 미션의 특성상 출발 시의 머뭇거림은 있지만, 이내 LCD 디지털 계기반의 숫자는 꽤나 빠르게 상승한다. 일단 속도가 붙으면 약 80km/h까지 쉴새 없이 달려가며, 그 이상부터는 조금씩 숨을 고른다. 90km/h을 넘어가도 불안함은 적고 매끄러운 엔진 회전 감각을 유지한다. 스로틀 그립의 감각도 멋스러운 디자인만큼이나 신경을 썼다. 그립을 감을 때 여타 스쿠터처럼 한 없이 가벼워 헐렁거리지 않고 적당히 묵직함이 느껴져, CVT로 손해 보는 엔진 회전과 구동력의 직결감을 어느 정도 상쇄한다. 그리고 부드럽다.

등판성능도 국내 지형에 맞는 세팅으로 지체 없이 꿋꿋하게 올라간다. 급경사는 어떨지 모르겠으나, 도심에서 마주치는 일반적인 언덕에서는 힘차게 올라간다. 게다가 전/후륜 12인치 알로이 휠을 채용해 무게를 감량했으며, 다양한 노면을 읽어내고 대처하는 서스펜션은 동급대비 부족함이 없다. 가속과 감속 및 코너링의 상황에서도 부드럽지만 노면과 진득하게 붙어있으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또한 리어에 장착된 듀얼 쇽업소버는 차체를 안정적으로 제어한다. 해당 등급에서의 한계 때문에 큰 요철에서는 댐퍼가 버티지 못해 튕겨내지만, 이내 신속하게 자세를 잡아준다. 프론트 서스펜션보다는 부드러운 세팅이며 충격의 여운을 최대한 억제한다. 이러한 것들의 조화가 저배기량 스쿠터가 갖는 빈 깡통이 쓰러지는 듯한 가벼운 느낌을 줄여준다. 그렇다고 에이온이 둔하지는 않다. 가볍고 민첩하지만 음료가 조금 남아 있는 캔처럼 하중의 안정감이 살아있다.

반면, 브레이크는 보다 적극적이어야 한다. 가속은 시원하지만 제동력은 늘어진다. /후륜에 각각 디스크와 드럼 방식을 사용하는데, 반응이 굼뜨다. 저속에서는 무난하게 사용할 수 있지만 고속에서는 리어가 다소 밀리고, 급 감속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예상보다 더욱 힘껏 레버를 쥐어야 한다. 브레이크 성능을 제외하면 주행성능에 큰 흠은 없다. 에이온은 스포티한 디자인과 도심 속 스프린터다운 신속한 기동성 및 주행품질을 완성도 높게 조합했다. 분명 만능을 추구하려는 올라운드 플레이어 스쿠터에 약간의 실증을 느낀 라이더에게 스쿠터 본연의 간편하고 잽싼 특성을 어필하기에 좋은 모델이다.


혼혈을 받아드리는 올바른 자세

그리고 이쯤에서 언급하자면, 알만한 사람들은 알 것이다. KR모터스의 에이온125가 대만의 모터사이클 제조사인 에이온모터의 OZ125E라는 것을. , 엄밀히 말하자면 대만의 스쿠터인 셈이다. 대만은 우리나라보다 유명한 모터사이클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는 나라답게 기술력도 한 수 위다. 때문에 보다 제품에 대한 신뢰도가 높다. 결국 에이온의 상품성은 일정 수준 이상의 값어치를 갖고 있다는 얘기다. 중요한 점은, 단순히 그대로 가져오지 않고 국내 실정에 맞게 일부 사항을 변경했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등판력을 강화한 엔진 세팅, 한국인 체형에 맞춘 시트, 디지털 타입의 계기반, 듀얼 쇽업소버, 12인치 알로이 휠, 알루미늄 엔진 커버 등이 그렇다. 겉모습은 비슷할지언정 꽤나 많은 부분에 차이를 둔 셈이다.

그러나 현재 에이온을 바라보는 소비자들의 관심과 시선은 한군데로 몰려있다. 바로 가격이다. 319만원으로 책정된 에이온은 가격이 만만치 않다. 300만원이 넘는 금액은, 사실상 각자의 계산기로 덧셈 뺄셈을 하다 보면 선택의 폭이 넓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결국 상대적으로 브랜드 파워가 부족한 에이온이 불리한 실정이다. 또한 국내 모터사이클 브랜드는 현재 일부 상용 모터사이클을 제외하면 주목도가 낮은 것이 사실이기에 이목을 끌기도 쉽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