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저배기량 스쿠터 시장에서 혼다는 강세다. 주역은 PCX였다. PCX는 125cc급 스쿠터의 기준을 바꿔놨다. 웬만한 125cc급의 스쿠터는 이제 소비자들의 만족을 얻기 힘들 정도다. PCX는 저배기량 스쿠터가 갖춰야 할 거의 모든 덕목을 갖췄는데, 이를테면 기동성과 연비와 편의성 등이다. 혼다의 내구성이야 이미 검증된 바고, 주행성능도 나무랄 곳이 없으며, 디자인도 정체성을 잡아 유행을 타지 않는다. PCX가 경쟁자들로부터 챔피언 벨트를 지킬 수 있었던 이유다.
이런 와중에 혼다는 별 다른 예고 없이 새로운 스쿠터를 출시했다. 바로 엘리트다. 이미 PCX가 속해있는 125cc급을 혼다는 꽉 잡고 있음에도 신기종을 내놓은 것이다. 그렇다고 엘리트가 PCX와 자리다툼을 하려는 것도 아니다. 동급의 배기량이지만 둘의 무대는 다르다.
현재 혼다의 국내 라인업 중 아홉 대가 배기량 125cc 이하이며, 그 중 스쿠터만 여섯 대다. 그 위급의 스쿠터를 보더라도 쿼터급부터 맥시스쿠터까지 탄탄한 라인업을 갖췄다. 그러나 저배기량에서 한 군데 비는 구석이 있다. 바로 스프린터. 어느 카테고리의 어느 배기량으로도 쉽게 대체할 수 없는 자리다. 스쿠터 본연의 특장점을 가장 부각시킨 카테고리인 셈이다. 혼다는 그간 공백이었던 스프린터 스쿠터의 담당자로 엘리트를 임명한 것이다.
지금의 스프린터는 이전만큼의 마니아 층을 형성하고 있지는 않다. 배기량이 작더라도 최대한 많은 것들을 포함하고 여러모로 요긴하게 사용할 수 있는 만능형 스쿠터를 찾는 추세다. 그러나 스프린터만이 가지고 있는 생기발랄한 몸놀림과 누구나 부담 없이 올라타기 좋은 간편한 구성 등의 매력은 어떤 스쿠터도 따라올 수 없다. PCX와 같은 지능적인 스타일에 손을 뻗는 사람도 있을 테지만, 도심 어느 곳에서든 가뿐하게 신을 수 있는 러닝화 같은 날렵하고 편한 스쿠터도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교통체증 속에서 스쿠터를 한 번이라도 타 본 사람이라면, 그리고 테트리스 블록처럼 틈 사이로 몸을 우겨 넣어야 하는 대중교통의 치열함 속에서 스쿠터를 한 번이라도 타 본 사람이라면, 스쿠터의 참 맛을 알 것이다. 그 홀가분함 때문에 스쿠터에 중독된다. 그 중에서도 125cc급의 스프린터 스쿠터가 제격이다.
대부분의 저배기량 스쿠터가 그렇듯 엘리트도 익숙해지는데 걸리는 시간이 짧다. 770mm의 시트높이와 발판의 폭, 핸들바의 높이 등이 매우 적당하고, 경쟁기종대비 전장은 짧지만 폭은 보통이다. 제조사마다 조금씩의 차이가 있는 것일 뿐 복잡한 도심에서 1인용 이동수단으로 사용하기에 대부분 알맞은 행색이다.
차체 구성도 간소한 것이 특징이다. 프론트에 마련한 좌우 수납공간은 스마트폰을 비롯한 소지품을 보관하기에 적당한 크기를 갖췄고, 가운데에는 가방이나 봉투 등을 걸 수 있도록 고리를 장착하는 등 해당등급에서 갖출 수 있는 최소한의 요소를 갖췄다. 물론 부족한 설정이 아닌 기본적인 구성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
반면 외형 디자인은 동급에서 가장 돋보일 정도로 꽤나 신경을 썼다. 스프린터다운 날렵함을 강조했는데 그 표현방법이 단순하지 않고 입체적이다. 덕분에 작은 덩치임에도 눈에 쉽게 띄며 볼륨을 보기 좋게 여물어 존재감을 높였다. 듀얼 LED를 적용한 헤드라이트는 매서운 눈매를 완성한 것은 물론 전력소모량 감소와 높은 시인성도 확보했다.
엘리트는 화이트, 블랙, 트리컬러의 총 세 가지 색상으로 출시했는데, 시승기종은 트리컬러 버전으로 카울 하나하나의 선명함이 도드라진다. 머플러를 덮은 카울과 마감도 저렴한 티를 내지 않으려고 노력한 티가 드러나며, 시트에도 레드 컬러의 스티치를 넣어 심심함을 달랬다. 특히 차체 곳곳에 카본패턴을 적용해 스포티함을 부각시킨 점이 매력이다. 동승자를 위한 발판은 일체형이다. 리어 쇽업소버도 레드 컬러의 스프링으로 포인트를 줬다.
유일하게 남는 외관의 아쉬움은 사이드스탠드다. 사이드스탠드에 발을 걸고 내릴 수 있게 한 튀어나온 부분의 길이가 너무 짧다. 발 뒤꿈치를 걸고 내리려고 해도 카울에서 미끄러져 헛발질을 하게 되며, 앞꿈치로 사이드스탠드를 내리려 해도 발목을 안쪽으로 꺾어 끄트머리에 살짝 걸려야 내릴 수 있다. 엘리트를 타는 사용자 대부분이 간편한 운동화를 신을 경우가 많겠지만, 발목을 자유롭게 움직이기가 힘든 라이딩부츠를 신는다면 조금 불편할 듯하다.
연료탱크 용량은 6.3L이며, 42km/L의 우수한 공인연비로 유지비용도 유리할 듯하다. 시트 밑의 러기지박스는 크다고 할 수 없지만, 사이즈와 형태에 따라 헬멧 하나는 충분히 수납할 수 있다.
엘리트는 125cc 공랭식 단기통 엔진을 탑재했다. 7,500rpm에서 9.4마력의 최고출력과 6,000rpm에서 1.1kg*m의 최대토크를 발휘한다. 시동을 걸면 차분하게 숨 고르기를 하지만, 스로틀 그립을 살짝 비틀면 의외로 피스톤 박동수가 듣기 좋게 울린다. 적당히 입체적으로 매만진 외관처럼 저배기량 단기통의 단출한 배기음도 보다 선명하게 박자를 탄다.
엔진은 초반부터 신속히 치고 나가고자 한다. 스로틀 그립을 비틀면 토크를 최대한 일찌감치 뽑아내 교통흐름을 앞장서려고 하며, 특히 도심에서 빈번히 오르내리는 약 50km/h~60km/h의 영역까지 도달하는 시간이 짧아 주행이 경쾌하다. 70km/h 이상으로 올라가면 조금씩 힘에 부치지만 답답함에 몸부림칠 정도는 아니다.
후반부의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중고속 위주로 세팅한 스프린터와 달리, 엘리트는 갑갑함을 일단 벗어날 수 있도록 초반부에 힘을 실었다. 몇몇 마주치는 대교 등과 같이 약간은 교통흐름이 빠른 곳을 제외한다면 도심은 언제나 번잡하고 흐름이 끊기기 일쑤다. 채 1km를 달리지도 못해서 신호등을 마주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엘리트는 다음 움직임과 경로를 위해 일찍부터 앞서나가 도심을 헤쳐나가기 유리한 설정인 셈이다.
중량도 110kg으로 조작이 수월하다. 전/후륜 10인치 휠은 작은 듯하나 실제 주행하면서 느끼는 단점은 크게 다가오지 않는다. 오히려 스프린터다운 가벼운 설정에 어울린다. 여기서 가벼운 설정이란 속이 텅 빈 듯 매가리 없다는 뜻이 아니다. 차체 움직임을 받쳐주기에 필요충분하면서 쓸데없이 덧입힌 것이 없어 거추장스럽지 않고, 도심용으로 마음 편히 시원시원하게 이동하기에 문제가 없다는 말이다. 깔끔하게 코너를 공략하고자 뱅크각을 고려하면서 타는 기종도 아니다.
CBS(Combined Brake System)브레이크는 안정적이다. 브레이크 레버를 움켜 쥐었을 때 나오는 제동력의 크기가 크지는 않으나, 레버를 조작함에 따라 제법 신속하게 반응한다. 게다가 리어 브레이크를 잡으면 전/후륜에 이상적으로 힘이 배분되기에 브레이킹 시의 안정감도 준수하다. 서스펜션은 전륜에 텔레스코픽과 리어에 모노 쇽업소버를 사용하며, 일반적인 저배기량 스쿠터의 성능과 크게 다르지 않은 움직임을 보인다.
스쿠터에도 다양한 종류가 있다. 배기량으로 급을 나누기도 하지만 용도와 목적에 따라 나뉘기도한다. 상용에 특화된 기종도 있고 승용을 위한 기종도 있다. 승용에서도 PCX처럼 저배기량 스쿠터의 고급화를 추구하는 종류도 있는 반면, 엘리트처럼 쉽고 빠르게 도심을 탈출하기 위한 것도 있다. 엘리트는 스프린터 스쿠터다. 판매가격은 247만원. 다양한 편의장비를 포함해 사용목적과 활용성을 최대로 끌어올린 스쿠터도 물론 훌륭하다. 하지만 합리적인 가격에 가장 간단하면서도 직관적인 설정으로 스쿠터의 최대 강점인 기동성에 초점을 둔 스프린터의 매력도 무시할 수 없다.
글
조의상 기자 us@bikerslab.com
제공
바이커즈랩(www.bikerslab.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