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즈키 3세대 하야부사, 당신이 기대했던 모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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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이면 스즈키가 스즈키했다고 표현해도 좋지 않을까? 카타나와 브이스트롬 1050XT를 통해 구세대 기종에 대한 재해석 능력을 입증한 스즈키가 이번에도 해냈다. 드디어 스즈키의 송골매가 움츠렸던 날개를 폈다. 해당 장르 최초로 300km/h의 벽을 허문 라이더의 로망, 하야부사가 3세대 모델로 돌아온 것이다.

1999년에 첫 등장한 하야부사는 1999년부터 2007년까지 1세대 모델로 출시됐고 2008년에는 배기량을 키운(1,340,cc) 2세대 모델이 등장했다. 2013년식부터는 브렘보 캘리퍼와 ABS를 탑재하며 완성도를 높였다. 지속적으로 발전한 하야부사는 국내의 경우 2017년부터 유로4 환경 규제가 적용됨에 따라 판매가 종료됐다.

기약 없는 기다림이 지속되던 2020, 스즈키 창립 100주년을 맞아 신형 하야부사가 등장할 것 이라는 기대도 높아졌다. 하지만 아무 소식 없이 해가 넘어갔고 유로5라는 높은 허들이 더해졌다. ‘이대로 하야부사의 출시가 무기한 연기되는 것은 아닐까?’라는 우려가 생길 무렵, 마침내 새로운 하야부사의 출시 소식이 전해졌다.
 
우리는 왜 이토록 하야부사를 기다린 걸까. 그 이유는 단순히 풀체인지 시기가 다가왔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각 브랜드 별로 최고 속도 경쟁이 한창이던 1990년대 후반, 하야부사는 유수의 경쟁 기종을 제치고 양산 모델 최초로 300km/h의 벽을 허물었다. 이후 최고 속도 경쟁이 과열화 조짐을 보이자 최고 속도를 300km/h 미만으로 표기하는 규정이 신설됐다. 때문에 공식적으로 300km/h을 넘어섰던 양산형 모터사이클은 하야부사로 유일무이하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가장 빠른 모터사이클이라고 하면 하야부사를 떠올리는 이가 많다.

하야부사는 글로벌 스테디셀러로서의 입지가 탄탄했다. 전 세계 18만대 이상의 판매고가 이를 뒷받침한다. 이와 같은 이유로 인해 3세대 하야부사 개발자들의 고민은 깊어졌다. 성능, 디자인, 상품성, 어디를 봐도 확고한 이미 상품성을 갖췄으니 변화를 꾀하기 쉽지 않았으리라. 이에 더해 하야부사 팬들의 기대치도 눈덩이처럼 불어난 상황이었다. 결국 정체성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새로움을 추구해야 하는 어려운 과제가 3세대 하야부사에게 주어진 것이다.

늠름하고 앙칼진 세 번째 송골매
마침내 피트에서 3세대 하야부사의 실물을 마주했다. 첫인상에 압도되는 모터사이클은 흔치 않다. 그러기 위해서는 당당한 크기, 우수한 파츠 구성, 그 속에 담긴 디테일, 독보적인 스타일 등 여러 요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놀랍게도 하야부사는 이 모든 것을 만족시킨다.

3세대 하야부사는 특유의 공기역학적 디자인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트렌드를 가미했다. 이미 뉴 카타나와 브이스트롬 1050XT를 통해 보여줬던 디자인 재해석 감각을 이번에도 유감없이 발휘한 것이다. 뉴 하야부사는 ‘The Refined Beast(다듬어진 야수성)’라는 콘셉트 하에 디자인됐다. 중점을 둔 부분은 넘치는 파워를 받아낼 차체 밸런스와 역동적인 스타일이다. 따라서 유려한 실루엣은 유지하면서도 보다 날카로워졌다. 프런트 페어링은 베일 듯한 콧대로 날을 세웠다. 매의 날개를 닮은 사이드 에어 벤트는 크롬 몰딩으로 마감했고 에어 슬릿을 장착했다. 머플러는 크기를 키웠고 리어 캐노피, 펜더, 테일 라이트의 디자인도 샤프하게 다듬었다.

시트에 앉으면 다리 사이로 들어오는 연료 탱크의 폭이 묵직하다. 그만큼 니그립도 쉽고 안정적이다. 이 묵직함이 하야부사의 존재감을 상기시킨다. 고개를 들면 전투기의 콕핏 같은 계기반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왼쪽부터 연료계회전계속도계수온계를 배치했고 정중앙에는 TFT-LCD 디스플레이를 탑재했다. 디지털 일변도로 변해가는 트렌드 속에서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통합을 높은 완성도로 구현한 것이다. 탑 브리지 하나도 허투루 만들지 않았다. 울룩불룩 근육질의 커버가 디자인 만족도를 더욱 높여준다.

크지만 날렵한 고속 투어러
이번 시승회는 공도와 트랙에서 실시돼 하야부사의 성능을 다방면에서 테스트할 수 있었다. 3세대 하야부사의 중량(wet weight) 264kg이며, 휠베이스는 1,480mm이다. 우선 그 우람한 크기에 대한 적응이 필요했고 익숙해지는 동안 전자 장비는 큰 도움을 줬다. 파워 컨트롤 3단계트랙션 컨트롤 10단계윌리 방지 10단계엔진 브레이크 제어 3단계 등을 입맛에 맞게 개별 설정할 수 있다. 큰 덩치에 겁먹을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큰 덩치와 관련해 또한 가질 수 있는 편견은 선회력이다. 하야부사의 듬직한 덩치를 보면 코너를 잘 돌아나갈 수 있을까 하는 합리적 의심이 든다. 시승 지역은 와인딩 코스가 많아서 충분히 코너링 성능을 테스트해 볼 수 있었다. 폭이 좁은 왕복 2차선 지방도, 제법 각이 깊은 코너가 이어진다. 차체 밸런스가 잘 잡혀 있어서인지 하중 이동에 의한 셀프 스티어링이 수월하다. 힘들일 일도 없다. 예상보다 가뿐한 몸놀림이다.

흔들리지 않는 편안함
또 한 가지 인상적인 부분은 편안함이다. 하야부사의 고속 안정성은 이미 정평이 나 있었지만 이번 세대에 들어 한층 더 발전했다. 직선 도로에서 파워 컨트롤을 가장 높은 단계로 설정했다. 1단에서도 풍부한 토크로 금세 100km/h에 도달한다. 100km/h를 넘어서도 공기역학적인 페어링 디자인 덕분에 주행풍의 부담이 적었다.
 
이후 기어를 3단에 고정하고 고속 투어링 능력을 테스트했다. 30~150km까지 3단이면 충분하다. ‘내가 지금 스쿠터를 타고 있나?’라는 착각이 들 정도다. 1,340cc 배기량에 기반한 넉넉한 토크는 회전 영역대를 불문하고 상시 쏟아져 나온다. 또한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힘차게 뻗어나갈 수 있기 때문에 심적으로 여유가 있다. ‘80km/h 내외로 달리고 있겠지?’라고 예상하고 계기반을 본 뒤 깜짝 놀랐다. 속도계 바늘이 120km/h를 가리키고 있었다. 진동과 주행풍의 영향이 적어서인지 실제 속도와 체감 속도의 차이가 예상보다 훨씬 크다. 120km/h로 달려도 이렇게 편안하다니 새삼 놀랍다. 

편안함의 첫 번째 비결은 엔진에 있다. 배기량과 기통 수만 같을 뿐, 3세대 하야부사의 1,340cc의 직렬 4기통은 완전히 새로운 엔진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피스톤, 커넥팅 로드, 크랭크샤프트 등의 핵심 부품을 모두 교체했고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조립 방식도 달리했다. 토크 제어 체결 방식에서 각도 제어 체결로 변경하며 엔진을 더욱 밀도 있게 제작한 것이다. 이와 더불어 차체 밸런스도 안정성 향상에 일조한다. 압출 성형 방식의 트윈 스파 알루미늄 프레임을 사용했고 차체 전후의 무게 비율은 50:50으로 맞췄다. 완벽한 균형을 이룬 하야부사는 저속에서도 고속에서도 안정적이다.

가장 즐거운 모터사이클의 조건
모터사이클의 즐거움 중 하나는 역시 가속 성능이다. 이와 같은 조건으로 따져보면 하야부사는 가장 즐거운 모터사이클 중 하나일 것이다. 또한 많은 라이더가 하야부사에게 기대하는 부분도 바로 이 짜릿한 가속력이다.

3세대 하야부사는 유로5 환경 규제에 대응하면서도 출력 손실은 최소화했다. 최고 출력은 190마력으로 이전 대비 소폭 줄어들었지만 실주행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중저속 구간의 토크를 강화하면서 제로백은 이전보다 빨라졌다. 그렇다고 고회전 영역에서 뻗어나가는 뒷심이 부족한 것도 아니다.

인제 스피디움 서킷에서 가장 긴 직선 구간은 640m. 중저속 구간을 강조한 토크 세팅 덕분에 가속력이 매섭다. 퀵 시프트를 통해 재빠르게 변속을 실시하면 3단에서도 여유 있게 200km/h를 돌파한다. 4단으로 변속을 시도할 즈음에 직선 구간이 끝난다. 트랙마저 하야부사의 모든 잠재력을 끌어 내기엔 좁아 보인다. 190마력의 최고 출력은 차고도 넘친다. 브레이크는 프런트에 브렘보 스틸레마 캘리퍼와 320mm 더블 디스크를 적용해 트랙 주행에서도 필요 충분한 제동 성능을 보여줬다.  IMU(관성측정 장치) 기반의 코너링 ABS도 탑재돼 있어 선회 중에도 안정적으로 라인을 수정할 수 있었다.

우리가 하야부사에게 기대했던 모든 것이 3세대 모델에 빠짐없이 담겨 있다. 독보적인 스타일, 고속 안정성, 화끈한 가속 성능 모두 한 단계 업그레이드됐다. 2021년 모델답게 다양한 전자 장비를 탑재해 안전과 편의도 만족시켰다. 이틀간 공도와 트랙을 오가며 진행된 시승은 다소 피곤할 법도 했지만 그보다는 즐거움이 컸다.
 
친절한 전자 장비는 진입 장벽을 낮추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슈퍼 스포츠 대비 편안한 포지션은 누구나 적은 부담으로 하야부사에 오를 수 있게 한다. 뛰어난 밸런스 덕분에 다루기도 어렵지 않다. 그렇기에 하야부사는 때에 따라서 편안하게도 스포티하게도 즐길 수 있었다. 하야부사는 넉넉한 배기량만큼이나 한계치도 포용력도 넘친다. 드림바이크는 결코 멀기만 한 존재가 아니다.



김남구 기자 southjade@bikerslab.com 
사진
김성원 포토그래퍼 (스즈키 코리아 제공)
제공
바이커즈랩(www.bikerslab.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