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얄엔필드 모토히말라야2019, 세계의 지붕을 달리다(하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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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5, 길흉화복(吉凶禍福)
전체 투어 일정의 반 이상을 소화했다. 2박 3일간의 누브라 밸리-판공초 투어를 마치고 ‘레’로 복귀했으며 다음 행선지는 초모리리 호수(Tso Moriri)다. 약 210km의 거리로 가장 긴 거리를 달려야 하는 날이었지만 오프로드는 비교적 무난했고 히말라야의 지형에 익숙해진 탓인지 동료 참가자들의 표정도 밝았다.

초모리리 호수는 출발지인 레로부터 동남쪽으로 200km 이상 떨어져 있으며 해발 4,522m에 위치해 있어 고도가 약 1,000m 이상 상승한다. 하지만 고도가 급격히 높아지는 오르막 구간 대신 완만한 긴 경사의 도로가 이어졌다. 오프로드는 접지력이 좋은 흙 길이어서 제법 속도를 낼 수 있었고 피로도도 적었다. 도로 사정이 좋은 만큼 중간 집결지까지의 거리를 평소보다 길게 설정했다. 라이더 간의 거리는 자연스레 늘어났고 이에 따라 혼자 라이딩을 하는 시간이 많았다. 

홀로 라이딩을 하다 보면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우선 어떻게 주행할지에 대한 생각을 한다. 시야가 가려져 있는 도로에서는 속도를 줄였고 오프로드에서는 장애물을 피해 나아가면서 체력을 안배했다. 여유가 생기면 고개를 들어 경치를 훑었다. 이날이 그랬다. 주변을 둘러볼 여유도, 라이딩을 즐길 순간도 가장 많았던 코스가 초모리리 호수로 향하던 길이었다.

즐거운 라이딩을 마치고 무사히 캠프에 도착했지만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했다. 캠프에 도착하고 한 시간 정도가 지나자 머리가 아파왔다. ‘1시간 정도 눈을 붙이면 괜찮아지겠지’라고 생각했지만 두통은 더욱 심해졌다. 속이 울렁거려 헛구역질을 했다. 결국 의사에게 진찰을 받기로 결정했다. 의사는 산소포화도가 64%까지 떨어져 위험한 정도라고 진단했다. (이후 알게 된 사실로 산소포화도의 정상 범위는 95%이며 90% 이하일 경우 진료와 치료가 필요하다고 한다.) 바로 주사를 맞고 산소공급기를 착용했다. 억지로 먹으면 탈이 날 수 있다고 해 약간의 음식을 먹고 바로 잠을 청했다. 16일 20시에 잠이 들어 17일 오전 6시까지 10시간을 내리 잤다. 나를 비롯한 몇몇 참가자들도 저산소증 증세로 약을 처방받았으며 산소공급기를 이용하는 이들이 늘어났다. 저산소증에 대한 대비는 라다크 지역을 여행하는 이들에게는 필수적이다. 저산소증으로 의식을 잃은 여행객을 마주한 일도 있었다. 고산 지대를 통과하는 여행객은 휴대용 산소공급기와 저산소증 치료 알약도 챙기는 것이 좋다. 분실하거나 미처 준비하지 못한 경우에는 레에서도 구할 수 있다.


DAY6, 여행의 끝을 잡고 
넘어져서 다치거나 몸이 아프면 무엇보다 걱정되는 것은 ‘다음날 라이딩을 못하면 어쩌나’하는 생각이었다. 어떻게든 모든 길을 달리고 모든 것을 느끼고 싶은 욕심이었다. 다행히 10시간을 푹 자고 나서 정상 컨디션을 되찾았다. 전날의 고통은 거짓말처럼 나았고 이제야 허기가 느껴져 아침도 든든히 먹은 뒤 엔진을 깨웠다.

한바탕 홍역을 치러서일까. 가뿐한 마음으로 라이딩에 임했다. 체력적인 어려움도 없었고 주행 거리도 110km로 짧았다. 츠모리리 호수에서 초 카르(Tso Kar) 호수로 이동했다. 대체로 평이한 길이 이어졌다. 비가 조금 내리기도 했지만 오프로드는 평탄했다. 히말라얀은 문제없이 잘 달렸다. 코너링과 험로가 많은 도로 특성상 낮은 기어에서 높은 엔진 회전 영역을 사용하는 일이 잦았다. 1차적으로 엔진브레이크를 사용해 제동을 해야 했다. 이후에 리어 브레이크, 프론트 브레이크를 순차적으로 사용했다. 이와 같은 주행이 잦으면 엔진에 무리가 갈법하지만 탈이 나는 일은 없었다. 흙 먼지를 뒤집어쓰고 도강을 하며 물에 젖고 순탄치 않은 길을 달렸지만 히말라얀은 굳건히 제 기능을 다했다.

아침 8시에 출발해 11시에 점심을 먹고 오후 2시가 채 안 된 이른 시간 캠프에 도착했다. 다만 이곳도 고도가 4,530m에 이르러 저산소증으로 고생하는 참가자가 있었다. 다행히 나는 전날 앓은 이후로 몸이 적응을 한 것인지 더 이상의 두통이나 열은 없었다.

캠프에서의 마지막 날은 여유롭게 보냈다. 몇몇 참가자들은 짧은 라이딩 거리가 아쉬웠는지 모터사이클을 타고 주변을 둘러보기도 했고 삼삼오오 모여 앉아 럼과 맥주를 마시기도 했다. 사진과 영상을 정리하고 각종 전자기기를 충전하며 정비를 했고 가벼운 산책도 했다. 16시 무렵이 되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각국의 참가자들은 모국어로 된 노래를 한 소절씩 부르며 투어가 끝나가는 아쉬움을 달랬다.


DAY7, 눈 내리는 히말라야
잠자리에 누워있던 새벽, 텐트 위로는 빗소리가 점점 커졌다. 아침에 눈을 뜨고 라이딩을 시작하면 비가 그치기를 바라며 잠을 청했다. 해가 밝아오자 아침부터 시끌벅적했다. 텐트 밖을 나가보니 온 세상이 하얗다. 적지 않은 눈이 내렸다. 인도네시아에서 온 한 참가자는 눈이 오는 것을 처음 본다며 웃음을 짓기도 했다. 대부분의 참가자들은 놀라고 당황한 모습이 역력했지만 스태프들은 매번 있는 일이라며 무덤덤해 했다. ABS가 장착돼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말을 건넬 뿐이었다. 그렇게 모토히말라야의 마지막 라이딩은 예상치 못한 설중 라이딩으로 대미를 장식했다.

내리는 눈으로 출발은 지연됐다. 출발에 앞서 스태프는 몇 가지 조언과 안내 사항을 전달했다. 클러치 레버를 잡지 말고 엔진브레이크를 적극적으로 이용할 것, 저단 기어로 운행하며 브레이크 조작에 유의할 것, 눈이 녹기 전이라 미끄러움이 덜할 것이니 안심할 것, 저고도 지역으로 내려가면 눈은 내리지 않을 것 등을 이야기했다. 

조심스럽게 라이딩을 시작했다. 몇몇 동료들이 눈길에 넘어지는 것을 보며 신중을 기했지만 결국 한차례 넘어졌다. 저속이어서 큰 사고는 발행하지 않았지만 온 신경을 곤두세운 체 주행했다. 매니저들의 조언대로 1단으로만 주행했고 엔진브레이크를 적극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클러치 레버는 잡지 않았다. 

약 30분간 눈길을 헤치고 나서야 포장도로를 만났다. 눈은 계속 흩날렸고 적설량은 10cm가 넘어 보였다. 눈은 길을 미끄럽게 만드는 것 이외에 시야 확보에도 어려움을 줬다. 해발 5,328m의 타그랑 라(Taglang La)부터 이어지는 하산 길은 눈발에 안개까지 겹치며 가시거리가 채 30미터도 되지 않았다. 도로 가장 자리는 눈으로 덮여 어디까지가 도로인지 분간하기 힘들었다. 최대한 도로가 드러난 부분으로만 주행하며 사고를 방지했다.  

고도가 낮아지자 눈은 비로 변했다. 눈이 쌓인 곳은 줄어 들었고 눈길은 빗길이 됐다. 빗길은 눈길 못지않게 위험했다. 빗물에 쓸려 내려온 흙과 돌은 도로를 덮었다. 흐르는 물과 토사는 범벅이 돼 진흙탕이 됐고 물줄기가 도로를 관통했다. 곳곳에서 정체도 이어지며 크고 작은 사고도 발생했다. 방수 성능이 미흡한 글러브나 부츠를 착용한 참가자들은 추위에 떨어야 했고 하산 후 집결지에서 얼은 손과 발을 녹였다. 레에 가까워질수록 파란 하늘이 고개를 내밀었다. 길었던 7일간의 라이딩도 어느덧 결승선이 보였다.


쉬운 날도 없었고 아름답지 않은 날도 없었다
숙소에 도착하자 큰 부상 없이 투어를 끝마쳤다는 안도감과 함께 뿌듯함이 밀려왔다. 사람들은 무언가를 끝마쳤을 때 시원섭섭하다는 표현을 종종 한다. 그러나 내게 있어 이번 투어는 시원함은 없고 섭섭함만 남았다. 낮에 내리쬐는 햇볕은 따가웠다. 비도 맞고 눈도 내렸다. 부츠는 마를 틈이 없었다. 고산 증세로 앓아 눕기도 했다. 때로는 ‘대체 얼마나 더 달려야 할까’라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이 모든 걸 기꺼이 감내하고 다시 한 번 달리고 싶은 까닭은 사람의 손이 타지 않은 천혜의 자연을 누비며 느낀 해방감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