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MW R18, 빅 박서와 Rock & Ro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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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인 시승기에 앞서 시승을 하는 동안 겪은 한 가지 에피소드를 소개하고 싶다. BMW R18 시승차를 인도받고 북악스카이웨이로 향했다. 팔각정에 도착해 R18을 주차하자 자전거를 타고 팔각정에 오른 다섯 분의 아저씨들이 R18 주위로 몰려든다. 화려한 크롬 장식, 낮고 길게 뻗은 실루엣, 연료 탱크에 커다랗게 자리한 BMW 엠블럼이 시선을 끈 것이다.

 
아저씨들은 한동안 신기한 듯 바라보며 여러 가지를 물어 보신 후, R18 옆에 서서 포토타임까지 가진 후에야 자리를 떠났다. 아저씨들은 많은 질문을 했다. 그 중 단연 기억에 남는 대화는 할리데이비슨인줄 알았는데 아니네요?’이다. 30대부터 60대까지 누가 봐도 R18의 매력이 분명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한편, 크루저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이렇듯 크루저 장르에는 확고한 선입견이 존재한다. 지금까지 크루저는 V트윈 엔진으로 대변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변화의 조짐이 일고 있다. 트라이엄프가 로켓3 2,400cc 직렬 3기통 엔진을 얹었고, BMW는 자사를 대표하는 박서 엔진의 배기량을 1,800cc까지 키워 R18에 탑재했다.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거대한 1,800cc 박서 엔진을 탑재한 크루저는 어떤 엔진 질감을 보여줄지, 할리데이비슨과 인디언으로 대표되는 아메리칸 크루저와는 어떤 차별화를 꽤 했는지 말이다.


어느 박물관에서 탈출하셨어요?
디자인부터 살펴봤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역시 엔진. 두 가닥의 다운 튜브 위에 올려진 거대한 박서 엔진은 보는 것만으로도 웅장함이 느껴진다. 기존 박서 엔진은 R1250 시리즈(GS, R, RS, RT)가 탑재한 1,254cc 엔진과 알나인티 시리즈가 탑재한 1,170cc 엔진이 존재한다. R18은 이보다 큰 1,802cc 엔진을 장착했다. 배기량이 약 600cc만큼 올라가며 그 크기도 비약적으로 증가했다. R18 론칭 기념 한정판인 퍼스트 에디션의 경우 실린더 헤드와 엔진 케이스에 크롬을 입혔고 연료 탱크와 리어 펜더에 핀스트라이프를 그려 넣어 클래식한 감성을 살렸다.

R18은 헤리티지 카테고리에 속한다. R18 1930년대에 등장했던 R5를 오마주했기 때문이다. 이는 차체 구성요소 곳곳에 담겨 있다. 머플러와 연료 탱크의 모양새, 시트부터 리어 휠 허브까지 이어지는 리어 프레임, 둥근 헤드라이트와 스포크 휠까지 대다수의 디자인을 R5에서 가져와 현대적인 감각으로 마무리했다. 덕분에 R18을 실제로 마주하면 박물관에 전시돼 있는 조형물을 보는 듯한 착각이 든다. 2020년에 출시한 신기종이라고 믿기 힘든 수준이다. 하지만 단순한 복각은 아니다. 헤드라이트에는 면 발광 LED 라이트를 적용했고 선회 시에는 주행 방향으로 각도를 바꾸는 어댑티브 터닝 라이브 기능도 탑재했다. 계기반 역시 클래식한 형태를 갖고 있지만 디지털 디스플레이를 통해 RPM, 기어 인디케이터, 트립 미터, 날짜와 시간, 연비, 라이딩 모드까지 다양한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크루저에 심어 놓은 BMW의 스포츠 DNA
디자인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럽지만 미술품이 아닌 모터사이클이기 때문에 성능이 중요하다. 시트에 앉으면 연료 탱크 옆으로 실린더 케이스의 냉각핀과 푸시로드가 눈에 들어온다. 이전까지 볼 수 없었던 특이한 광경에서 조형미가 느껴진다. 시동을 걸면 차체가 크게 요동치며 거대한 1,800cc 박서 엔진이 잠에서 깨어난다. 좌우로 휘청일 정도로 박력 있는 움직임이 처음에는 이질감으로 느껴지지만 이내 익숙해지고 나중에는 자연스럽다. 스텝은 직각에 가까운 미들 스텝이다. 발 앞을 가로막은 박서 엔진 때문에 편하게 발을 앞으로 뻗을 수 없지만 미들 스텝만으로도 불편함은 없다. 순정 핸들바는 극단적인 설정 없이 적당한 곳에 위치해 있어 고속 주행 시에는 상체를 앞으로 기울일 수 있었고 크루징 시에는 편안한 자세를 취할 수 있다.

R18은 샤프트 드라이버를 통해 동력을 전달한다. 구동력의 손실이 적어 직결감을 느낄 수 있고 스로틀 응답성도 시원스럽다. 출발 전 배기음을 감상한다. 부드러운 듯 거칠게 박동하는 빅 박서 엔진 때문에 정차 시에도 핸들바로 제법 진동이 느껴진다. 동력을 연결하자 325kg 육중한 차체가 미끄러지듯 부드럽게 출발한다. R18은 중저속 영역(3,000rpm)에서 가장 강력한 토크 (16.1kg*m)를 발휘한다. 저속 영역에서는 묵직한 토크를 맛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크루저 치고는 높은 편인 4,750rpm 영역까지 지치지 않고 출력(최고 출력 92마력)을 뽑아 내는 부분이 인상적이다. 헤리티지를 물려받은 크루저임에도 불구하고 스포티한 주행 감각을 중시하는 BMW의 색채가 묻어있음을 알 수 있다. 덕분에 2단 기어에서도 무리 없이 100km/h까지 가속이 가능하며 그 순간에도 엔진의 과부하가 느껴지지 않는다. 정리해보면 1,800cc 엔진은 부드러우면서도 강력한 성향을 갖고 있다. 이는 라이딩 모드를 통해 더욱 확연하게 구분된다.


빅 박서와 함께 Rock & Roll
R18은 크루저 장르에서는 흔치 않게 라이딩 모드를 탑재했다. 현재 할리데이비슨은 라이딩 모드를 탑재한 기종이 없으며 인디언의 경우 올해 출시한 챌린저 정도만이 라이딩 모드를 탑재했다. 트라이엄프 로켓3도 라이딩 모드를 탑재했지만 아직까지 정통 크루저에 라이딩 모드 적용은 일반화되지 않은 상황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라이딩 모드의 명칭이다. 일반적으로 노멀, 어반, 스포츠, 투어 등의 직관적인 작명법으로 라이딩 모드를 분류하지만 BMW는 조금 다른 접근 방식을 취했다.
 
‘Rock & Roll’. 돌멩이가 굴러가는 것처럼 과격하지만 신나는 음악을 R18은 라이딩 모드에 적용했다. 로큰롤의 시작이 재즈였던 것처럼 부드러운 ‘Roll’모드와 시원스러운 ‘Rock’모드를 통해 R18은 자연스럽게 두 템포를 오간다.

Roll 모드부터 테스트했다. 도심에서 빠져나가기 전까지 예민하지 않은 스로틀 응답성을 보여줬기에 주행 스트레스가 적었고 리니어한 출력으로 크루징에도 적합했다. 이윽고 교통량이 적은 직선 구간에서 Rock 모드로 변경했다. 모드는 주행 중에도 스로틀 그립을 감지 않고 있으면 버튼을 눌러 변경할 수 있다. Rock 모드에 들어서자 얌전했던 R18이 빨간 깃발을 향해 돌진하는 황소처럼 묵직하면서도 빠르게 가속한다. 배기음도 날카로워졌으며 가속 성능도 Roll 모드와는 확연히 다르다. 고회전 영역(4,000 rpm 이상)으로 치달아도 지친 기색이 없으니 스로틀 그립을 더욱 움켜질 맛이 난다. 코너링 구간에 들어서면 다시 Roll 모드로 변경한다. 기분에 따라 상황에 따라 R18과 함께 Rock & Roll을 즐긴다.
 
브레이크와 서스펜션은 적당한 세팅이다. 다만 프런트 브레이크의 경우 스펙 상의 성능을 보여주는지 의문이다. 답력을 강하게 가했을 때는 충분한 제동 성능을 발휘하지만 세세한 컨트롤이 어려운 점은 아쉽다. 반대로 리어 브레이크는 즉각적인 제동 성능을 보여줬다. 서스펜션은 충격 흡수력이 우수했고 고속 주행 시에도 차체를 단단하게 잡아준다.


시승 전에는 R18을 단순히디자인이 아름다운 모터사이클이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R18디자인도 아름다운 모터사이클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BMW는 이전에도 크루저 시장 진입을 시도한 바 있다. 이전 모델인 R1200C 1997년 등장해 2004년 자취를 감추며 장수하지 못했다. 이를 반면교사 삼은 걸까. 이번에는 다양한 전술을 빼들었다.

BMW의 새로운 시도는 가지치기 모델의 출시다. 윈드스크린, 새들백을 장착한 R18 클래식을 선보이며 새로운 R18의 등장을 예고했고 커스텀 빌더와 함께 제작한 R18 드래그스터와 R18 브레히만도 공개했다. 커스텀 모델의 경우, 양산으로 이어질지는 불투명하지만 새로운 실험을 시도하는 사실만은 분명해 보인다. 크루저의 장점인 다양한 커스텀을 지원하기 위해 반스 & 하인스와 함께 제작한 머플러를 출시하기도 했다. 빅박서 엔진의 존재감, 헤리티지와 스포츠 DNA의 조화, 다양한 커스텀 지원 등이 어떤 시너지 효과를 낳을 수 있을까. R18이 앞으로 보여줄 BMW 크루저의 미래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글 / 사진
김남구 기자 southjade@bikerslab.com 
제공
바이커즈랩(www.bikersla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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