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차, 모스크바
방을 함께 쓰는 P본부장이 상기된 기색으로 “H단장이 도착했다.”며 막 깊은 잠에 빠져들던 저를 깨웁니다. 아니 잠깐만, H단장이 크라스노야르스크를 떠난 건 겨우 3일 전인데… 벌써 본대를 따라잡아서 모스크바에?!! 비몽사몽~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싶습니다.
모스크바 쯔베르스카야 거리 골목 안 바(BAR)에 H단장, P본부장, S씨, 그리고 저까지 4인이 맥주병이 놓인 테이블에 둘러앉았습니다. H단장은 수리를 마친 모터사이클을 타고 첫날 1천300km, 둘째날 1천400km, 셋째날은 자정을 넘기면서 1천500km를 달려 기어코 모스크바에 도착한 겁니다. 처음엔 어제 본대가 묵은 블라디미르에서 숙박한 뒤 날이 밝으면 찾아오려고 생각했는데, 200km만 더 달리면 본대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곧장 달려온 거라고 하네요. 어제 다크호스 S씨에 이어서 이제 H단장까지, 이로써 출발했던 당시의 9인이 다시 한 자리에 모인 셈입니다.
기쁜 자리지만 미묘한 엇갈림 또한 존재합니다. 크라스노야르스크에 모터사이클 수리를 위해 남은 건 P단장과 S씨, 두 사람이었으나 출발이 달랐고 제각기 나 홀로 주행으로 본대와 합류했기에 그렇습니다. “모스크바에서 다 함께 만날 거라면 굳이 먼저 떠날 필요가 있었나?” 라는 H단장의 물음과 개인적인 용무가 발생해서 급히 한국에 먼저 돌아가야 할 사정이 생긴 S씨의 생각이 엇갈립니다. S씨는 모레 새벽녘에 홀로 모스크바를 떠나 라트비아와 폴란드를 거쳐서 최단거리 경로를 달려 독일에 도착한 뒤 모터사이클을 선적대행사에 맡기고 1주일 먼저 귀국 비행기를 탄다는 계획입니다.
S씨를 제외한 8인도 경로에 대한 의견이 제각각으로 나뉩니다. S할배는 폴란드를 지나는 단거리 경로보다 핀란드와 스웨덴을 거쳐 독일로 들어가는 쪽이 좋다고 합니다. 고령임을 감안하면 지금이 아니면 기회가 없다고 생각하시는 게 분명합니다. H단장 역시 그동안 모터사이클 문제로 정신없이 달리기만 했으니 이제라도 남은 구간을 즐기고 싶다고 합니다. 반면에 Z씨는 체력적인 부담을 호소하며 최단거리 경로를 달릴 것을 주장합니다. 교포 K씨와 J여사도 거기에 동조하고 나섭니다. 결국 8인은 4명씩 두 개 팀으로 나눠 달리기로 합니다. 북유럽으로 돌아서 달리는 ‘북유럽 팀’은 P본부장, S할배, H단장, 그리고 저까지 4명입니다. 라트비아와 폴란드 등 최단거리를 경유하는 ‘낭만 팀’은 Z씨를 비롯한 교포K씨, J여사, J총무 4명입니다.
모스크바에서 보내는 이틀째, 원정팀은 모처럼 하루 동안 느긋하게 움직이며 휴식을 즐깁니다. 호텔 이동과 시내 관광 뒤 딜러 정비소에 맡겨놓은 모터사이클을 찾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보냅니다. 붉은 광장을 찾아서 크레믈린 궁과 성 바실리 성당 등을 구경하는 동안 비가 뿌립니다. 그동안 비를 거의 만나지 않아서 달리기가 참 좋았는데, 달리지 않고 하루를 온전히 관광으로 보낼 때 비가 내리다니… 운이 좋습니다. 붉은 광장에 이어 모스크바 대학 부근 전망 명소까지 구경하고 빅토르안(안현수)의 사인이 걸려있는 ‘서울식당’에서 밥을 먹으니 그동안 누적됐던 여독이 가시는 느낌입니다.
21일차, 상트페테르부르크
겨우 다시 만났던 원정팀이 또 세 개로 나뉘었습니다. 새벽녘에 S씨가 독일을 향해 먼저 출발했고, 북유럽 팀과 낭만 팀이 4명씩 나뉘어 모스크바를 벗어납니다. 걱정이 약간 되긴 하지만, 지난 3주간 시베리아를 건너면서 모두가 능숙해진 터라 별 탈 없으리라 믿습니다. 9명이라는 큰 인원이 힘들고 긴 투어를 일사천리로 해 내기란 무척 어려운 일입니다. 긴 여정을 거치다 보면 각자의 개성이 표출되고 지향점이 다르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무리해서 함께 가기를 외치기보다는 이렇게 팀을 나누는 것도 방법일 겁니다. 5일 뒤 다시 만날 곳은 체코 프라하로 정해 두었습니다.
북유럽 팀이 라트비아로 향하는 낭만 팀을 뒤로 하고 상트페테르부르크를 향해 북상합니다. 우파나 카잔을 지나면서 유럽 냄새를 느꼈다면 모스크바나 상트페테르부르크는 그냥 유럽입니다. 러시아를 달리면서 처음으로 유료도로를 만나고 휴게소 음식도 상당히 세련(?)돼 있습니다. 길 가 높다란 콘크리트 구조물 위에 T34전차를 전시해 둔 것이 인상적입니다. 2차 대전 시기에 러시아를 침공한 독일군을 결사항전으로 물리친 것을 기념하는 듯합니다.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당시 독일군에 29개월이나 포위당한 채 40만 명이나 되는 아사자를 내면서도 버텨내서 ‘영웅도시’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습니다.
상트페테르부르크 구도심은 네바 강이 발트 해를 만나는 지점에 있고 제정러시아의 황제(짜르)인 피터대제의 도시라는 뜻입니다. 피터대제는 어릴 적에 유럽 각국을 순방했는데 네덜란드에서 본 운하에 특히 감명을 받았나 봅니다. 황제에 즉위한 뒤 1703년부터 터를 다지기 시작했는데 늪지를 매립하기 위해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누구든 방문자는 돌을 가져오도록 한 겁니다. 배는 30kg 이상의 돌을 10~30개, 육로 방문자는 10kg 이상의 돌 3개라는 식이었다니 터 닦기에 들인 공이 엄청납니다. 한편 공사에 동원된 노예가 죽으면 그대로 늪지에 버렸던 터라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뼈 위에 선 도시’라는 음침한 별칭도 있습니다.
1918년에 수도가 다시 모스크바로 옮겨가고 구소련 시절에는 ‘레닌그라드’로 불리다가 1991년부터 다시 상트페테르부르크가 됐습니다. 운하와 가까운 앰버서더 호텔에 숙소를 정한 뒤 와이파이를 이용해 인터넷을 연결하니 문자가 하나 들어와 있습니다. 자동차로 세계일주 중인 J아저씨가 근처라고 하네요. 그는 모터사이클 라이더기도 하지만 가족과 함께 하기 위해 자동차를 선택한 진정한 ‘싸나이’입니다. 예전에 모터사이클로 함께 일본투어를 할 때 계획을 얼핏 듣긴 했지만 이미 떠난 줄은 몰랐습니다. 그런데 서울에서 1만km나 떨어진 머나먼 이국땅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만나게 될 줄이야.
불과 십여년 전에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을 스마트폰 하나만 있으면 너무나 손쉽게 할 수 있는 세상입니다. 원정팀이 러시아 곳곳에 흩어져 있을 때도 서로 소통이 가능하니 불안감이 별로 없고 다시 만나기도 수월합니다. 다시 팀을 나누어 움직일 수 있는 것도 그런 경험 덕분이겠지요. 호텔을 나서서 운하 옆을 따라 천천히 걸으며 정취를 만끽합니다. 여러 갈래로 나뉘어 조성된 운하를 따라 양편에 늘어선 카페와 커피하우스에 세계 각국에서 온 여행객들이 붐빕니다. 왠지 기분이 좋아집니다. 카잔교회를 지나 성모승천교회에 이르자 사람들이 더 많아집니다. 인파 속에서 낯익은 J아저씨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서로가 반가움에 손을 흔들며 이국 땅에서의 만남을 기뻐합니다. 성모승천교회를 마주보는 레스토랑에서 함께 저녁식사를 하며 서로가 지나온 여정을 묻고 설명하고 웃고 떠듭니다. 발티카 맥주가 맛난 밤입니다.(15편으로 이어집니다)
글
김종한 admin@bikersla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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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커즈랩(www.bikerslab.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