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횡단 투어, 384시간 그리고 6,000km의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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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데이비슨을 타고 미국을 여행하는 일은 아주 뜻 깊은 모험이다. 할리데이비슨은 1903년에 미국에서 태어나 20세기의 미국 문화와 그들의 성장통을 함께 겪으며 크루저의 아이콘으로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7 9일부터 24일까지 한국의 할리데이비슨 라이더들은 할리데이비슨의 고향에서 또 다른 세상을 경험했다. 14 16, 6,000km를 모터사이클로 여행한 이들이 전한는 생생한 모험담을 시작한다.


루트66, 미국의 세월을 품고 달리다

한국에서 떠난 지 13시간 만에 도착한 곳은 미국 일리노이 주에 위치한 시카고. 시카고는 1904년 할리데이비슨의 첫 전시장이 문을 연 곳이며, 미국의 마더로드라 불리는 루트66의 시작점이기도 하다. 루트66은 시카고에서부터 캘리포니아 주에 위치한 산타모니카까지 약 3,945km에 달하는 국도이다.

1926 11월에 완공된 루트66은 동부와 서부를 잇는 미국 최초의 대륙횡단 고속도로 중 하나였는데, 미국의 경제불황 시기에 미국 시민들이 서부로 이주하면서 루트66을 따라 주변에 많은 상점들이 들어섰다. 이후 점차 이들의 생활과 문화가 스며들어 미국의 역사를 느낄 수 있는 명소가 됐다. 루트66 1985년 고속도로의 발달로 폐쇄됐지만, 도로를 그대로 보존해왔기에 현재는 관광객은 물론 많은 라이더들이 미국을 투어할 때 반드시 달리고 싶은 코스로 손꼽힌다.

이런 역사적인 루트66을 횡단하기 위해, 12일간 함께할 모터사이클을 할리데이비슨 시카고 딜러에서 제공받았다. 모터사이클을 렌트하기 위해 깐깐한 서류절차를 거쳤지만, 왠지 모를 친근한 기류가 맴돌았다. 바다 건너 반대편에서 날아온 우리를 맞이하는 그들의 시선이 따뜻한 이유, 말도 통하지 않는 생전 처음 보는 외국인과 마주하고도 함께 웃을 수 있는 이유, 할리데이비슨이라는 매개체가 공통된 감성을 자아냈기 때문일 것이다.


고향이 전하는 할리데이비슨

이튿날, 본격적인 투어가 시작됐고, 첫 번째 목적지는 할리데이비슨의 고향이라고 할 수 있는 위스콘신 주에 위치한 밀워키였다. 쭉 뻗은 도로 위를 따라 V트윈의 고동감과 함께 흘러가다 보니 어느덧 할리데이비슨 뮤지엄(Harley-Davidson Museum)에 도착해 있었다. 2008 7월에 개관한 할리데이비슨 뮤지엄은 밀워키의 주요 산업기반인 유리와 강철로 외부를 디자인해 한 눈에 들어왔다. 이 곳은 12만평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규모지만, 그들의 113년에 달하는 할리데이비슨의 역사를 담아내기에는 허황된 크기가 아니었다.

무엇보다 눈에 들어오는 것은 할리데이비슨 엔진의 벽’. 총 무게 1만 파운드에 달하는 30여 개가 넘는 할리데이비슨의 엔진이 벽에 전시돼있다. 이 수 많은 엔진들은 할리데이비슨과 라이더를 감성 코드로 맺어준 연결고리이기에, 이 둘 모두에게 소중한 심장이나 다름 없다. 지금의 할리데이비슨을 있게 한 보석과도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 밖에도 박물관 내에는 역사적인 모델은 물론 2011년 일본을 강타한 쓰나미에 휩쓸려 1년을 표류하다 콜롬비아 주에서 발견된 할리데이비슨도 전시돼있는 등 다양한 테마로 수 많은 볼 거리를 제공했다. 이렇듯 할리데이비슨의 자서전을 눈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은 라이더에게 큰 기쁨이자 자부심을 안겨주는 부분이었다.

셋째 날 찾은 곳은 필그림로드의 파워트레인 공장. 할리데이비슨의 상징과 같은 V트윈 엔진이 탄생하는 곳이다. 독특한 엔진 사운드와 고동감을 만들어내는 이 곳은 과연 그들의 말처럼 모든 것은 엔진에서부터 시작됐다는 의미를 육감으로 느끼게 해주는 부분이었다.


대자연을 품고 감성을 타고 달린다

우리의 일정은 미국 내 6,000km 횡단. 할리데이비슨 본토의 문화를 경험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모든 일정을 차질 없이 마칠 수 있도록 철저한 준비와 안전을 챙기는 것이다. 체력관리를 위해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여행 4일째가 되던 날 본격적인 장거리 투어가 시작됐다. 하루 510km 투어는 만만한 거리가 아니다. 서울에서 부산을 향하고도 100km 이상을 더 나아가야 한다.

쉽지만은 않은 이 길고 긴 하루의 여정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목적지에 무사 복귀했다. 이번 여행에 참가한 3명의 여성 라이더는 국내 최초로 미국횡단을 성공한 여성 라이더라는 타이틀을 눈 앞에 뒀기에 장거리의 피곤함에 무너지지 않았다.

그리고 다음 날, 어제보다 약 100km가 더 늘어난 600km를 달려야 했다. 목적지는 사우스다코타에 위치한 배드랜드(Badlands)였다. 배드랜드란 말 그대로 황무지를 뜻한다. 7,500만년 전부터 쌓였던 모래와 진흙, 화산재 등이 침식작용에 의해 깎여나가면서 만들어진 곳으로 수많은 봉우리가 거대한 산과 같은 절경을 만들었다. 이런 대자연과 함께 라이딩하는 기분은 어디서도 만끽하지 못할 흥분을 안겨준다.

6일째로 접어든 날에는 숙소에서 두 시간 남짓한 곳에 위치한 러시모어(Rushmore) 산으로 향했다. 러시모어 산은 미국 역사에서 위대한 대통령이었던 조지 워싱턴, 토머스 제퍼슨, 에이브러햄 링컨, 시어도어 루스벨트의 얼굴이 조각되어 있는 산으로 유명하다. 15년에 걸쳐 완성된 조각이기도 하다. 할리데이비슨의 프로젝트 러시모어도 여기에서 따왔으며, 라이더가 진정으로 원하는 모터사이클을 제작하기 위해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여 새로운 투어링 라인업이 완성된 것이다.

러시모어 산을 뒤로 하고 향한 곳은 모터사이클의 성지인 스터지스(Sturgis). 매년 8월 둘째 주, 스터지스에는 세계적인 규모의 모터사이클 랠리가 개최된다. 1938년부터 시작해 올해로 76회 랠리가 개최될 예정이며, 이 기간에는 약 40~50만 명의 라이더들이 참석한다. 비록 일정과 맞지 않아 그 장관을 볼 수 없었지만, 이들의 모터사이클 문화의 규모와 다양성에 다시 한번 놀랐다.

조금은 적응이 된 것일까. 또 한번 600km를 달려야 하는 일정에도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오늘의 목적지는 와이오밍 주의 북동부에 위치한 데빌스 타워다. 이름 그대로 악마의 탑인 이 곳은 약 6천만년 전 화산 폭발로 생겨난 260m 높이의 거대한 화성암 기둥이자 미국 최초의 천연기념물이다. 하지만 이런 대자연의 웅장함도 잠시, 우리는 갈 길을 재촉해야 했다. 그래도 어느새 2주에 달하는 대륙 횡단의 반 이상을 달려왔다는 사실에 새삼 놀랐다.


투어, 그 이상의 감동을 남기다

여행 8일 째인 7 16. 세계 최초의 국립공원인 옐로스톤으로 향했다. 그랜드캐니언의 세 배가 넘는 이 곳은 세 개 주에 걸쳐져 있으며, 현재 알려진 것만으로 약 1만 개의 간헐천이 있다고 한다. 이 밖에도 수많은 폭포와 계곡, 초원, 야생동물까지. 그리고 이런 경이로운 자연을 사방에 두른 채 달리는 대륙의 와인딩 코스는 또 하나의 절경을 남겨줬다.

이렇듯 한반도의 40배가 넘는 미국의 광활한 대륙은 그 크기만큼이나 6개의 시간대가 존재한다. 하루에 두 개의 시간대를 오가는 경험은 쉽게 접할 수 없는 일이다. 우리는 네바다 주로 넘어가 관광도시로 유명한 라스베이거스를 거쳐 로스앤젤레스에 다다랐다. 서서히 미국 투어의 끝자락을 향해 가고 있었다. 540km를 달려야 하지만 그간의 장거리 라이딩, 함께한 일행과의 팀워크로 모두가 무사한 라이딩을 할 수 있었다.

우리의 장대한 투어는 어느덧 11일째로 접어들었다. 120번 고속도로를 따라 캘리포니아 주에 있는 요세미티 국립공원에 도착했다. 1백만 년 전, 빙하의 침식작용으로 화강암 절벽과 U자형 계곡이 형성됐고, 면적 6,061km² 3,998m의 해발고도를 갖고 있는 거대한 자연유산이다. 또한 이 곳에는 미국에서 제일 높은 도로로 알려진 티오가 패스(Tioga Pass)가 있어, 할리데이비슨을 타고 할 수 있는 최고의 라이딩을 경험할 수 있었다.

그리고 다음 날, 일정을 서둘러 샌프란시스코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금문교로 향했다. 금문교는 골든게이트 해협을 가로질러 샌프란시스코와 북쪽 맞은편의 마린카운티를 연결하고 있다. 우리는 이 곳을 지나 매년 세계 10대 드라이브 코스로 선정되는 캘리포니아 1번 도로인 퍼시픽 코스트 하이웨이로 향했다. 빅스비 다리(Bixby Bridge)를 지나고 캘리포니아 센트럴 해안을 끼고 달릴 수 있는 이 도로는, 한쪽으로는 끝이 보이지 않는 바다가 펼쳐져 있고, 반대쪽은 드높은 산과 언덕이 어우러져 있어 라이더에게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황홀한 라이딩을 선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