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카티 멀티스트라다가 V4 엔진을 품었다. 두카티 멀티퍼퍼스 최상위 기종인 멀티스트라다 V4 S는 V형 4기통 엔진의 우월함과 첨단 기술의 조화로 멀티퍼퍼스의 신영역을 개척한다.
신세계로의 초대, V4 그란투리스모 엔진
두카티는 멀티스트라다 V4를 공개하기에 앞서 새로운 엔진에 대한 소식을 먼저 전했다. 멀티스트라다 V4의 성향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바로 이 엔진이다.
그란투리스모 V4 엔진은 멀티스트라다 V4에 처음으로 탑재된 엔진이다. 1,158cc 배기량의 V형 4기통 형식이며 압축비가 14:1에 달하는 폭발적인 퍼포먼스를 갖췄다. 최고출력은 10,500rpm에서 172마력(PS)을 발휘하며 최대토크도 12.7kg*m(@8,750rpm)에 이른다. 이 스펙을 보고 합리적 의심이 생겼다. ‘172마력의 엔진으로 오프로드를 달리는 게 상식적인 일인가? 두카티는 이런 스포티한 엔진을 왜 멀티퍼퍼스에 탑재했을까?’ 하지만 시승을 이어가자 묘하게 설득되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부드럽고 상냥한 첨단 투어러
멀티스트라다 V4의 첫 인상은 부드러움이다. 도심을 탈출하기까지 라이딩 모드는 어반으로 설정했다. 멀티스트라다 V4는 다섯 가지 라이딩 모드를 지원하는데 각 모드마다 모터사이클의 성격이 180도 변한다. 출력 특성은 물론 트랙션 컨트롤(DTC), 윌리 컨트롤(DWC) 등의 전자 장비 개입 정도까지 자동으로 조절된다. 어반 모드는 스로틀 반응이 예민하지 않고 엔진브레이크도 부드러워 도심 주행의 스트레스를 줄여줬다.
두 번째로 받은 인상은 친절함이다. 멀티스트라다 V4에는 모터사이클 분야에서 전무했던 두 가지 기능이 탑재됐다. 바로 ACC(Active Cruise Control)와 BSD(Blind Spot Detection)다. 두 기능은 전후방 레이더를 통해 작동한다.
도심에서 유용한 기능은 BSD다. 사각지대의 차량을 감지해 사이드 미러 LED램프를 통해 위험을 알린다. 교통량이 많은 도심에서는 차선 변경에 유의해야 한다. 일차적으로 백미러와 숄더 체크를 통해 주변을 파악하지만 그렇게 해도 사고는 종종 발생한다. BSD의 성능은 탁월했다. 차선을 변경을 하려다가도 LED램프가 점등되면 다시 한 번 주변을 둘러보게 되니 사고율이 낮아 질 수 밖에 없다.
ACC + 퀵 시프트 = 라이딩의 신세계
도심을 빠져나와 한적한 국도에 들어섰다. 다음으로 테스트할 기능은 ACC다. 크루즈 컨트롤은 투어링 모터사이클이라면 기본적으로 탑재하는 경우가 많지만 ACC는 자동차의 전유물로 여겨졌다. 모터사이클 라이딩은 조작의 재미가 큰 레저 활동이다. 따라서 ‘차간거리 유지의 ACC가 모터사이클에 과연 필요할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경험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ACC는 스로틀 그립을 조작하지 않아도 정속으로 주행하며 전방의 차량을 인식해 자동으로 차간거리까지 유지한다. 앞 차량이 속도를 줄이면 멀티스트라다 V4도 감속했고 전방에 장애물이 없으면 설정해 놓은 속도까지 저절로 가속하는 방식이다. 좌측 핸들바의 버튼을 통해 손 쉽게 활성화 할 수 있고 차간 거리 조정, 속도 조정까지 간편하게 설정할 수 있다. 브레이크를 잡으면 자동으로 비활성화 되며 다시 버튼을 누르면 활성화 되기 때문에 작동법이 직관적이다.
ACC는 퀵 시프트와 결합해 완전체가 된다. ACC가 활성화된 상태에서도 기어 변속을 할 수 있는데 퀵 시프트 역시 정상적으로 작동한다. ACC와 퀵 시프트를 동시에 활용하면 클러치 레버와 브레이크 레버 조작을 최소화할 수 있다. 앞 차량이 속도를 줄이면 퀵 시프트로 기어를 내리고 앞 차량이 가속하면 크루즈 컨트롤 최대 속도를 상향 조정하면 된다. 퀵 시프트는 조작감이 부드럽고 작동감이 확실하다. 원하는 시점에 정확히 변속된다는 느낌이다. 출발과 정차를 제외하면 클러치 레버를 잡지 않아도 될 정도다.
따라서 멀티스트라다는 장거리 라이딩에 특화돼 있다. 지방으로의 장거리 라이딩을 즐기는 이들이라면 이에 따른 피로도가 상당하다는 사실을 잘 알 것이다. 물론 조작에 따른 즐거움도 크지만 시간이 지나고 몸에 피로가 축적되면 변속과 가속의 지루한 반복 활동으로 변모한다. 이때 ACC와 퀵시프트의 조합은 놀라운 수준의 라이딩 편의성을 제공할 것이다. 모터사이클의 기술이 여기까지 왔다는 사실이 새삼 감격스럽다.
멀티퍼퍼스에서 맛보는 슈퍼 스포츠 성능
그렇다면 멀티스트라다 V4가 부드럽고 친절하기만한 모터사이클일까? 물론 아니다. 멀티스트라다 V4 역시 두카티의 일원인 만큼 고속과 와인딩에서 진가를 드러낸다.
멀티스트라다 V4는 역방향 크랭크 회전으로 자이로 효과를 억제했다. 파니갈레 시리즈의 데스모세디치 엔진과 동일한 방식이다. 크랭크 축이 모터사이클 진행 방향과 주행 중에 차체를 기울이는 과정이 민첩하다. 트랙에 들어서도 될 정도로 피드백이 즉각적으로 이뤄지고 제동력 역시 헛점을 찾기 힘들다.
스포츠 모드로 설정하면 엔진 출력 값이 최대로 상승한다. 배기음도 날카로워지고 스로틀 그립을 살짝 움켜 잡는 것만으로 차체가 들썩인다. 퀵 시프트를 통해 순간적으로 가속하면 프런트 타이어에 접지력이 약해진다. 하지만 DWC로 윌리를 방지할 수 있고 전자 장비가 개입하니 보다 적극적으로 엔진의 한계를 시험할 수 있다. 6,000rpm을 넘어서면 가변 밸브가 작동한다. 자동차 게임에서 부스터를 쓰는 것과도 흡사한 감각이다. 슈퍼 스포츠에서나 맛볼 수 있는 짜릿한 가속력을 멀티퍼퍼스의 편안한 포지션에서 느껴볼 수 있었다.
멀티스트라다 V4의 또 한가지 놀라운 점은 고속 안정성이다. 차체 중량은 214kg으로 리터급 멀티퍼퍼스라고 보기 힘들만큼 가볍지만 고속에서의 안정감은 으뜸이다. 시승 중 한적한 국도를 달리고 있었다. 약 80~100km/h로 주행하고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계기반을 확인했는데 실제 속도는 그 이상이었다. 실제 속도와 체감 속도의 간극이 예상보다 컸다.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은 멀티스트라다 V4를 타고 오프로드를 가보지 못한 것이다. 멀티스트라다 V4에는 온로드 비중이 높은 타이어가 장착돼 있다. 가벼운 임도 주행은 가능하겠지만 본격적으로 산으로 들어가기에는 부족한 스펙이다. 따라서 멀티스트라다 V4를 타고 오프로드를 본격적으로 누빌 계획이라면 타이어부터 교체하는 것이 좋겠다.
또한 차체 무게 중심이 높은 정도는 아니지만 차량 정중앙에 위치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따라서 정지 상태에서 차량을 컨트롤하는 느낌이 가볍지는 않았다. 임도에서는 전도가 빈번하고 저속에서 컨트롤이 중요하기 때문에 이 부분은 허들이 될 것으로 보인다. 물론 숙련자라면 문제될 것이 없어 보인다. 또한 라이딩 모드 중 엔듀로 모드는 부드러운 토크 특성으로 오프로드에서의 접지력 유지를 도울 것이다.
멀티스트라다는 다양한 재미를 선사한다. 편안하고 부드러우며 한편으로는 공격적이다. 최첨단 장비로 무장했고 장거리 라이딩 능력은 혼다 골드윙에 버금갈 정도로 뛰어나다. 이에 더해 오프로드도 주행할 수 있고 와인딩도 즐겁다. 멀티퍼퍼스의 신세계가 열린 기분이다.
글
김남구 기자 southjade@bikerslab.com
제공
바이커즈랩(www.bikerslab.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