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앞에 도열해있는 모터사이클의 평균 전장은 2,510mm이고, 평균 무게는 390kg가까이 된다. 또한 배기량은 1,745cc와 1,868cc로 국산 준중형급 자동차와 비등하며 가격 또한 만만치 않다. 이 십 수대의 할리데이비슨 투어링 기종은 한 눈에 봐도 크고 웅장하다. 미국에 특화된 투어러라는 점이 틀림 없고, 그렇기에 지금, 미국 워싱턴주의 타코마에 위치한 호텔 앞에서 이 거대한 모터사이클의 시동을 걸어보려는 참이다.
중요한 것은 이틀 동안 약 636km를 달리면서, 2017년식 투어링 모델이 과연 얼마나 할리데이비슨다운지를 확인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할리데이비슨의 ‘빅트윈’ 계보에 새로운 식구인 밀워키–에이트(Milwaukee-eight 이하, 밀워키)엔진이 등장했고, 공랭식과 공수랭식으로 무장한 이 엔진의 기술력 속에 어떻게 감성을 녹여냈는지가 관건이기 때문이다. 감성과 성능의 기로에서 이들 모두를 만족시키기란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밀워키 엔진은 라이더의 요구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봐도 무방하다. 할리데이비슨은 고객들의 요구사항과 취향을 파악했고, 그에 맞게 탄생한 밀워키 엔진은 더욱 편안하게 투어를 즐길 수 있도록 강력해졌으면서도 효율적으로 진화했다. 이는 결국 소비자들이 할리데이비슨에 원하는 점이 바뀌었다는 뜻이다. 물론 여전히 할리데이비슨의 V트윈 엔진의 고동을 사랑하는 라이더도 다수 존재하겠지만, 이들의 목소리는 이전만큼의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도 사실이다. 지금 할리데이비슨의 가늠좌는 21세기를 향해 있고, 더 이상 이전의 역사에 취해 현실 망각을 하지 않고 현재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 새로운 발걸음의 도약인 밀워키 엔진의 시동을 걸었다.
고른 숨결과 선명한 파워 전달
차분하다. 분명 배기음 자체가 작지는 않지만, 온 몸을 떨게 하는 진동이 없어 출발 전의 심호흡과 라이딩의 준비과정이 한결 안정적이다. 장거리 라이딩에 앞서, 모터사이클과 마음가짐을 가다듬는데 있어 방해요소가 적어진 느낌이다. 시작부터 라이더를 흥분케 하지 않는다. 깔끔한 출발 신호다.
그럼에도 육중한 크기와 묵직함은 여전하다. 투어링 라인업에서 비교적 가벼운 스트리트 글라이드에 올라탔음에도 만만치 않다. 352kg을 조종하기 위해서는 약간의 힘을 필요로 했다. 미국 브랜드답다. 그러나 이것도 잠시, 이 커다란 차체가 일단 움직이기 시작하면 낮게 깔린 차체와 시트가 묵직함을 안정감으로 바꿔주고, 넉넉했던 라이딩 포지션은 어느새 안락함을 전해줘 이 커다란 덩치를 실감케 하지 않는다.
저회전부터 나오는 두툼한 토크 덕분이다. 밀워키 엔진은 배기량 1,745cc(이하, 107)와 1,868cc(이하, 114)로 나뉘며, CVO 라인업을 제외한 모델에는 107엔진이 탑재된다. 기존의 트윈캠103엔진을 대체하는 107엔진은 배기량이 더욱 커졌고, 최대토크도 10퍼센트가 상승했다. 여기서 나오는 두툼한 토크는 300kg을 훌쩍 넘는 무게를 거침없이 밀어 붙이는데 전혀 부족함이 없다. 실린더 당 4개의 밸브와 2개의 점화플러그를 장착하면서 흡/배기 효율도 증가했다. 이전의 V트윈 엔진이 갖는 45도 각도가 여전히 연료탱크 아래에서 할리데이비슨의 엔진임을 드러내지만, 느낌은 전혀 다르다.
아이들링 상태에서부터 시작된 억제된 진동은 레드존까지 엔진을 채찍질해도 변함 없다. 4,500rpm을 넘어가면서부터 조금씩 기계적인 울림이 들려오지만, 핸들바와 시트를 타고 넘어오는 불필요한 진동이 없기에 어느 회전수를 사용하더라도 피곤하지 않다. 또한 3,250rpm에서 발휘되는 15.3kg*m의 최대토크는 덩치를 잊게 할만큼의 파워를 전달한다. 물론 계기반의 회전이 급격하게 치솟지는 않지만, 라이더가 느끼는 체감은 계기반 바늘의 상승 속도 이상이다. 스로틀 그립을 감아줄 때 나오는 엔진의 반응도 꽤나 직결적이다.
CVO사양에 적용되는 114엔진은 16.9kg*m(3,250rpm)의 더 높은 최대토크를 발휘해, 아스팔트 위로 내리꽂는 펀치에 조금 더 거친 맛이 돈다. 이처럼 밀워키 엔진이 뿜어내는 피스톤 하나 하나의 토크는 코끼리가 뛰어가듯 한 발 한 발이 묵직하다. 대배기량 V트윈 엔진의 힘이지만, 러버 마운트와 카운터 밸런서 등으로 진동을 잡아내 전작의 트윈캠 엔진보다 세련된 설정이다. 더욱 강력한데 다루기 수월하고 편안해서 장거리 라이딩이 쾌적하다. 또한 세 가지의 밀워키 엔진 시리즈 중 두 종류인 트윈캠107과 트윈캠114는 실린더 헤드의 열기를 냉각수로 식힌다. 때문에 열을 보다 효과적으로 컨트롤할 수 있고 퍼포먼스 향상에 도움을 준다. 이와 함께 에어클리너의 디자인 변경부터 배기 파이프의 재설계 등 라이더에게 오는 열을 최대한 줄였다.
몇 시간을 달려도 눈 앞에 펼쳐진 것이라고는 쭉쭉 뻗어 나오는 도로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은 나무와 산들 뿐이다. 5,500~6,000rpm부터 시작되는 레드존은 신경 쓰이지 않으며, 엔진의 파워는 순간의 가속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못해 도로 위로 흘러 넘친다. 이 넉넉함이 여유로운 라이딩을 완성한다. 200km/h를 넘나드는 고속 투어러만큼 빠르지는 않을지언정, 이 호사스러운 풍경을 빠른 속도와 함께 어깨너머로 스쳐 보내기에는 아깝다. 절대속도에서 해방된, 약간은 느긋한 할리데이비슨의 투어러가 주변의 자연을 만끽하며 달리기에 더할 나위 없다. 이것이 미국이 해석한 투어러의 감성이다.
맛이 다른 투어러
워싱턴주 북서부에 위치한 올림픽 국립공원의 절경을 어깨 너머에 걸치고 달린 101번 도로는 밀워키 엔진만큼 훌륭했다. 눈을 깜빡이는 순간조차 아까우리만큼 짙푸른 녹색의 산기슭과 청명하게 물든 다봅 만(Dabob baby)이 고르게 포장된 도로의 좌우에 끝도 없이 펼쳐졌다. 그리고 이 절경에 놓인 장난스러운 와인딩 코스는 코너링과 투어링의 테스트를 하기에 적절했고, 밀워키 엔진을 품은 할리데이비슨은 풍경만큼이나 뛰어난 움직임을 보여줬다.
새롭게 채용한 쇼와 서스펜션은 차체의 움직임을 부드럽게 완성했다. 리어 서스펜션은 프리로드 조절 범위를 향상시키고 새로운 에멀전 시스템을 확보했으며, 49mm의 대구경 프론트 포크는 듀얼 밴딩 밸브 시스템으로 더욱 뛰어난 승차감을 갖췄다. 때문에 어느 속도에서나 안정적인 움직임을 보인다. 마치 도로 위의 요철을 먹으면서 달리는 듯하다. 노면 상태가 고르지 않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는 있지만, 서스펜션이 그리고 노면에 지긋이 문댈 수 있는 묵직한 중량이 불쾌한 충격을 꿀꺽 삼켜준다. 차체는 노면과 함께 리듬을 조금 타지만 둔탁함을 라이더에게까지 허락하지 않는다.
시트도 엉덩이를 편안하게 받쳐준다. 섀시가 미처 걸러내지 못한 요철을 두툼한 시트가 최대한 부드럽게 달래주며, 막강한 토크로 밀릴 수 있는 골반을 적절한 높이의 요추 받침대가 잡아준다. 또한 핸들링은 덩치와 생김새에 비해 매우 부드럽다. 특히 울트라 라인은 프론트와 리어의 무게중심이 모두 높게 위치해있어 차체를 기울이는 동작이 의외로 쉽다. 다만, 무게에 비해 상대적으로 가벼운 핸들링은 코너링 시 만난 요철에 고개를 젓듯 좌우로 조금 털리고, 이 순간에 느껴지는 리어의 묵직함이 비로소 400kg에 육박하는 모터사이클이였음을 실감케 한다.
반면 배거 스타일의 글라이드 라인은 울트라 라인에 비해 핸들링이 조금 단단한다. 리어의 무게중심이 프론트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아 코너를 돌아나가는 구간에서 타이트한 맛을 느낄 수 있다. 물론 할리데이비슨의 투어링 계열에 한에서다. 그리고 이런 움직임에 비추어볼 때 114엔진을 조금 더 재미있게 써먹을 수 있는 녀석은 CVO 스트리트 글라이드라고 볼 수 있겠다. 순간에 터지는 막강한 폭발력을 코너를 탈출하는 순간에 터뜨림으로써 박차고 나가는 맛이 시원스럽다. 게다가 스크리밍 이글(Screamin’ Eagle) 튜닝 시스템이 적용되면, 단계에 따라 마력과 토크가 상승하고 배기량도 소폭 늘어나기 때문에 더욱더 파워 넘치는 주행이 가능하다. 물론 이 역시 107 엔진에도 적용 가능하다.
감성을 새롭게 깨우친 빅트윈
더 많은 소비자를 끌어안기 위해 예전의 거친 감각을 많이 줄였다고 하지만, 여전히 미국의 방식대로 풀어냈다. 아날로그 타입의 계기반은 자동차를 연상케 하면서도 필요한 정보는 간단 명료하게 보여주고, 클러치 레버는 여전히 악력계를 당기듯 무거우며, 굵은 핸들 그립은 철봉처럼 굵어 손으로 잡고 있다는 느낌을 확실히 전해준다. 제동력은 브레이크 레버와 페달의 생김새만큼이나, 크지만 뭉툭하게 힘이 나온다. 이러한 미국 냄새 풀풀 풍기는 특징들이 누구에게는 낯설겠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넉넉하고 넓은 도로와 환경은 자동차가 붐빌 일이 적고, 따라서 저만치 멀리에 자동차가 보이면 크고 두터운 손으로 그저 레버를 움켜쥘 것이다. 게다가 ABS가 기본으로 장착돼있어 무거운 무게를 제동하기에 전혀 부담스럽지 않다. 거대했던 발판은 그들의 발 사이즈에는 안성맞춤이겠으며, 앞 뒤로 밟을 수 있는 기어 시프트는 발등 부위의 가죽이 손상될 일이 없어 멋진 부츠를 신고 달릴 수 있다. 여기에 새롭게 얹은 밀워키 엔진은 투어링의 감각을 더욱 살려준다.
실제로 절대속도가 어떤지는 상관 없다. 그러나 지금 스로틀 그립을 당기고 있는 나는 누구보다도 이 밀워키 엔진의 거대한 폭발력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다. 엉덩이와 핸들바로 전해오는 불규칙한 고동만이 감성이 아니다. 한 없이 부드럽게 흘러가는 여느 투어링 모터사이클과 달리, V트윈의 리듬에 따라 나오는 토크 필링이 풍경 속에서 할리데이비슨과 함께하고 있다는 맛을 전해준다. 이것이 할리데이비슨이 추구하는 투어링(라이딩)의 감성이다.
107엔진과 114엔진을 탑재한 2017년식 투어링 및 CVO 라인업 모두 장시간의 투어에 어울리는 여유로움을 보여줬고, 약간은 사치스러운 힘도 기분 좋게 도로 위로 흘리는 듯하다. 그래도 목적은 감성에 박히는 스트라이크를 노린다. 그러나 단순하게 V트윈만이 전할 수 있는 고동의 감성이 아니라, 퍼포먼스와 필링의 조화로 투어링 감각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한 접근이다. 이것이 21세기에 던진 할리데이비슨의 변화구다.
글
조의상 기자 us@bikerslab.com
제공
바이커즈랩(www.bikerslab.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