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의 어느 오후에 도착한 곳은 그의 작업실. 음악작업을 위한 넓은 책상과 컴퓨터, 책꽂이에 꽂힌 수십 권의 책들, 소중한 것들로 채워져 있을 금고, 선반 위에 놓인 디아벨 머플러. 그가 작업실에 도착하기 전, 소파에 앉아 둘러본 것들을 머릿속에 넣어보니 그의 삶의 일부가 그대로 투영된 곳이었다. 몇 분 후 엘리베이터의 화살표가 누군가 올라오고 있음을 말해줬다.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면 바로 작업실로 이어지는 구조였다.
사진으로 봤던, 공연에서 봤던, TV에서 봤던 그대로다. 반팔 티셔츠 밖으로 보이는 양 팔에는 타투가 빼곡했다. 무지개 색깔 옷을 입지 않는 이상 그의 타투보다 돋보일 티셔츠는 없을 만큼 화려했다. 반면에 장난기 뚝뚝 떨어지는 표정에는 젊음이 묻어났고, 눈은 선한데 눈빛은 또렷했다. 약간의 스크래치 섞인 목소리는 듣기 좋게 귀에 꽂히면서도 탁하지 않았다. 바카디151으로 지금의 목소리를 만들어낸 일화는 알만한 사람은 다 안다. 서른 여덟 살의 래퍼 빌스택스(BILL STAX)였다.
17년 차 래퍼에게 건넨 첫 번째 대화의 주제는 모터사이클. 모터사이클이라는 공통된 관심사였던 것도 있지만, 대화하는 것을 좋아하는 빌스택스는 다양한 이야기를 생동감 있게 풀어냈다. 동작도 크고 시원시원했다. 자신의 기분과 표현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그답게 이야기 도중 통하는 것이 있으면 자동반사처럼 ‘오 쉣(oh shit!)’이라는 감탄사와 함께 악수를 건네기도 했다. 반면, 우물쭈물 두 손으로 그 악수를 받았으니 E.T.가 검지손가락으로 청한 인사를 검지손가락 두 개로 받은 꼴이 됐다. 빌스택스는 래퍼지만 많은 일을 한다. 최근에는 부산에 음식점도 개업했다.
“나는 래퍼이자 사업가고 사업가이자 래퍼다. 나를 뭐라고 부르던 크게 상관이 없고, 나 스스로도 래퍼로만 규정하고 싶지 않다.” 서른 여덟 살의 빌스택스는 젊다. 흔히 떠올리는 틀 안에 갇힌 생각과 굳은 사고방식을 갖고 있을 법한 나이의 이미지는 전혀 없다. 항상 새로운 것과 젊은 에너지를 받아들이는 자세가 그의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대변했다. 그래서인지 그의 대화 속에는 늘 미래에 대한 고민이 가득했다. 할리데이비슨의 아이언883을 탔었다는 것을 진작에 알고 있었지만, 역시 그는 달랐다.
“4기통 엔진은 나한테는 너무 부드럽다. 반면에 2기통 엔진은 특유의 거칠고 감성적인 면이 있다. 할리데이비슨도 그래서 탔고, V트윈만의 고동을 즐겼다. 아이언883외에도 할리데이비슨의 다양한 기종을 경험해봤는데, 포티에잇도 매력적이었고 다이나 시리즈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대부분의 할리데이비슨 라이더들이 V트윈의 감성에 취해있을 때, 그가 할리데이비슨에 가장 관심을 갖고 있던 것은 다른 것이었다. 바로 라이브와이어. 예상 외였지만, 동시에 예상대로 미래를 보는 그답다. 라이브와이어는 할리데이비슨이 제작한 전기 모터사이클로, 지속적인 테스트 라이딩과 시장조사를 통해 꾸준히 연구하고 있는 기종이다.
“아마 대부분의 할리데이비슨 라이더들은 라이브와이어를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V트윈 엔진이 없는 것이 어떻게 할리데이비슨이냐면서. 하지만 자원고갈로 인해 내연기관은 사라질 것이다. 설령 남아있다 하더라도 먼 미래에는 너무 비싸서 구매하지 못할 수도 있다. 환경오염도 심각하다. 때문에 최신 기술을 사용하는 것을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생각해야 한다. 지금은 비싸더라도 구매의사와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러한 것들을 구매하고 이용해줘야 단가도 내려가고 기술력도 더욱 발전하며 대중화가 된다. 내가 원하는 스타일의 전기 모터사이클이 출시된다면 나는 내연기관을 버리고 전기 모터사이클을 탈 것이다. 지금 가장 관심 있는 자동차도 테슬라다.”
생각이 앞서가는 그를 쫓아가기가 벅차, 조금 더 현실에 붙잡아 두기 위한 질문으로 화제를 돌렸다. 그의 오른쪽 어깨에 새겨진 두카티 타투로. “나에게 가장 매력적인 모터사이클 브랜드는 두카티다. 그리고 가장 섹시하다. 두카티는 2기통 엔진을 상징으로 하면서도 뛰어난 기술력과 꾸준한 업데이트를 통해 고성능을 뽑아낸다. 할리데이비슨의 V트윈과는 다른 거친 감각을 갖고 있으면서도 전자장비 등의 최신 기술을 적용하는데도 소홀하지 않다. 현재 소유하고 있는 디아벨도 아주 마음에 든다. 안정적이면서도 빠른, 크루저이면서도 네이키드 같은 멋이 있다. 코너링은 크게 욕심이 없다. 외관에서 뿜어져 나오는 멋, 특유의 엔진 필링과 떨림, 폭발적인 가속력 등의 설정이 내 취향에 들어맞았다.”
카페레이서 등의 레트로 스타일 이야기를 슬쩍 꺼내봤지만 역시나 돌아오는 대답은 관심 ‘무‘다. 미래지향적이지 않기 때문. 이처럼 그의 젊은 사고방식과 태도는 음악에도 고스란히 묻어난다. 힙합음악 중에서도 ‘트랩’이라고 불리는, 요즘 세대의 주류 힙합음악 속에서 자신의 실력과 스타일을 여지 없이 드러낸다. 스무 살이나 어린 친구들과도 반말로 대화하면서 어울린다는 그는 단순히 젊어지고 싶어하는 것이 아니라 감각자체가 깨어있다.
“’트렌드’를 늘 곁에 두는 자세가 필요하다. 음악뿐만이 아니라 사업이든 뭐든 마찬가지다. 단순히 유행을 좇는 것이 아니라, 지금 시대가 필요로 하는 것을 알고 그 안에 나만의 장점과 감각을 녹여내야 나를 돋보이게 할 수 있고 살아남을 수 있다.” 마치 스펀지 같은 흡수능력으로 세상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그다.
한 없이 밝고 긍정적일 줄만 알았던 빌스택스도 힘든 시기는 있었다. 몬스터696으로 두카티를 처음 접한 그는 사실 즐기기 위해 모터사이클을 탄 것이 아니었다. 몸도 마음도 지치고 우울증도 앓고 있었을 당시, 그를 짓누르고 있던 고통과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한 배출구가 필요했다. 모터사이클이었다.
“두카티의 몬스터가 힘도 세고 친절하지 않은 괴물 같은 모터사이클이라는 이야기를 들었고, 그래서 더 욕심이 생겼다. 아들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위험을 감수하는 스릴을 즐기고 싶었다. 그만큼 심리적으로 불안정했고 죽음이라는 것도 멀리 있지 않다고 느꼈다. 어렸을 때부터 모터사이클에 관심은 있었지만, 결국 가장 힘들었던 시기에 인생의 벼랑 끝에서 스로틀 그립을 잡은 것이다.”
아슬아슬한 삶과 죽음의 사이에서 스릴을 즐기면서 더욱 빠른 모터사이클을 찾게 됐고, 기변에 기변을 거치면서 지금의 디아벨을 손에 넣은 것. 라이딩 스타일도 날 것 그 자체. 헬멧과 글러브 외의 다른 보호장비는 가급적 간편하게 착용한단다.
“법에 어긋나지 않게 헬멧 착용은 지킨다. 그 외의 라이딩기어는 본인의 자유다. 왜 모든 라이딩기어를 착용한 라이더는 박수를 받고, 그렇지 않은 라이더는 손가락질을 받아야 하나? 라이딩기어를 착용하는 사람들은 그 사람 나름대로의 삶이기에 존중한다. 하지만 라이딩기어를 착용하지 않은(필수 장비 이외의) 사람도 존중할 줄 알아야 한다. 안전에 대한 자세는 본인의 재량에 달렸고, 그렇기에 성인이 즐기는 취미다.
나는 모든 신호등은 철저히 지키지만 속도는 즐기는 편이다. 하지만 내가 고속 주행을 할 때는 한적한 도로에서뿐이다. 사고가 나더라도 남에게 피해주지 않는 그런 상황에서만 말이다. 나를 욕하는 사람도 많을 거다. 상관 없다. 하지만 내 말에 동의하는 사람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어렸을 때 잡지를 보면서 침 흘리고, 영화에 나오는 모터사이클을 보면서 멋있다고 생각해서 모터사이클에 입문한 사람이 많을 것이다. 멋있어서 시작했는데 정작 멋을 부리지 못한다. 고속도로도 달리지 못한다. 법도 개선될 필요가 있고, 모터사이클은 자유의 상징이라고 외치는 라이더 스스로도 서로를 존중할 필요가 있다.”
빌스택스는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고 거침없이 내뱉는다. 하지만 성숙하지 못한 어린 친구들의 고집이나 투정이 아니라,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들에 모두 충분한 근거를 갖고 있다. 지금의 시대가 요구하는 ‘트렌드’를 정확히 파악하면서도 그 중심에는 변하지 않는 자신만의 ‘클래식’한 신념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이것이 빌스택스 그리고 남자 ‘신동열‘이 젊지만 노련한 이유다.
거친 남자가 전한 이야기는 날카로웠지만, 한겨울에는 신호대기 중에 엔진 근처에 손을 대고 녹인다는 것이 그 역시 똑 같은 라이더라는 것을 느꼈다. 조금은 유해졌지만, 그가 지금껏 선보였던 앨범은 세상을 향해 한 없이 쓴 소리를 내뱉었다. 체게바라가 모터사이클로 여행을 한 뒤 삶의 전환점을 맞이했던 것처럼, 빌스택스 역시 삶의 기로에서 모터사이클을 통해 일어설 수 있었다.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팬으로서 바라본 그의 모습은 어느 때보다도 젊었다. 래퍼로서, 사업가로서, 라이더로서.
“체게바라, 그는 자신의 인생을 타인을 위한 삶으로 살았다. 나만의 행복이 아닌 타인의 행복까지생각하는 태도, 그리고 그것을 실현해 세상을 바꾼 것이 나에게 많은 영향을 줬다. 나는 예전보다 돈도 더 많이 벌고 음악도 더 자유롭게 하고 있다. 내가 사업을 계속 이어가는 것도 단순히 좋은 자동차를 사고 좋은 집을 사기 위해서가 아니다. 이런 단순한 생각이야말로 잘못된 자본주의의 표본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필요하고 중요하다. 하지만 돈을 버는 목적의식을 조금 더 크게 생각할 필요가 있고, 나 역시 나만의 이익보다는 사람들에게 많은 이득을 주기 위해 더 큰 사업을 준비 중이다. 지금의 나는 예전보다 자본주의를 조금 더 이해하게 됐고, 이 시스템을 선하게 이용하려고 한다.” 빌스택스는 최근에 물 정화 시스템에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그의 예전 음악에는 낭만이, 지금의 음악에는 여유가 묻어난다. 삶과 벼랑 끝의 좁은 경계선 위에서 시작된 그의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그리고 두카티의 ‘악마’를 타는 빌스택스. 그의 디아벨은 삶의 영역으로 올라왔고, 빌스택스는 젊음과 미래의 방향으로 스로틀 그립을 비틀고 있다. 래퍼로서, 사업가로서, 라이더로서.
글
조의상 기자 us@bikersla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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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커즈랩(www.bikerslab.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