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3회를 맞이한 흙먼지 레이스(DUST RACE)는 드넓은 흙 길에서 뿌연 먼지를 일으킨다고 해서 흙먼지 레이스다. 명칭에서부터 레이스의 성격이 직관적으로 드러나며, 운영자는 물론 출전하는 라이더 역시 일반인이 대부분이다. 때문에 서로가 ‘아마추어’다운 친숙함에서부터 모이기 시작했고, 그렇게 그들만의 문화를 만들어냈다.
올드 모터사이클 기반의 레이스
흙먼지 레이스는 ‘올드바이크매니아’ 카페에서 탄생한 레이스다. 올드바이크매니아는 클래식 스타일과 클래식 모터사이클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만들었기 때문에 카페의 취향과 색깔이 뚜렷하고 유대감이 돈독하다. 이런 점이 긍정적으로 버무려져 흙먼지 레이스를 만들었다.
회색 빛으로 변해가는 도시와 디지털 시대가 지배하는 환경 속에서 흙먼지 레이스는 조금은 동떨어진 느낌이다. 모두가 즉각적이고 깔끔한 새 것에 열광할 때, 이들은 조금 느리고 더러워짐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연 속에서 옛 것을 즐긴다. 하지만 이 옛 것에는 단순한 구식이 아닌 아날로그 감성과 ‘마이너’함을 담고 있다. 이러한 비주류의 태생적 한계이자 이와 함께 갖는 장점은 특별함이다. 그들은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 없었던 올드 모터사이클과 더트(dirt)의 조합으로 새로운 레이스와 문화를 만들어냈다.
제 3회 흙먼지 레이스가 열린 장소는 충주 수안보에 위치한 이글밸리 리조트다. 이번 경기는 전년도에 비해 더욱 많은 인원과 더 넓은 경기장을 갖춰 레이스를 보다 다채롭게 즐기게 했다. 참가한 인원은 200여명에 달했으며, 이는 결코 적지 않은 숫자다. 이들은 특별한 홍보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저 자체적으로 즐기는 문화를 형성해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환영하고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 특히 일반인이 레이스를 할 수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때문에 이들은 스스로 아마추어를 강조하고 아마추어이기를 원한다. 누구나 쉽게 접하고 탈 수 있는 저배기량의 모터사이클로 레이스를 펼치는 것, 바로 이 부분이 흙먼지 레이스의 묘미다.
프로다운 아마추어
경기에 출전하는 모터사이클 역시 우리에게 친숙한 것들이다. 250cc 이하의 모터사이클 및 스쿠터가 대부분이며, 이 또한 비교적 오래된 기종들이다. 시티100, 미라쥬, VF125, RX125, 몽키, 닥스50, 에이프(ape), FTR223 등 과거에 우리가 타왔던 혹은 봐왔던 이른바 ‘오토바이’가 대다수다. 최첨단 기술이 집약된 고성능 모터사이클로 펼쳐지는 경기와 비교하면 누군가는 비웃을 수도 있겠지만, 이런 익숙한 ‘오토바이’가 아마추어다움을 대변하며 모두가 즐길 수 있는 레이스로 만들어준다.
그러나 레이스는 레이스. 규칙은 철저하다.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도 차질 없이 경기가 진행된 이유다. 클래스도 세분화했다. 배기량에 따라 50cc전, 100cc전, 125cc전, 쿼터(250cc)전, 무제한전으로 나뉘며, 모델 타입에 따라 언더본전과 몽키전, 그리고 특별 클래스로 운영진전과 여성전도 펼쳐졌다.
저배기량 모터사이클이라고 레이스 자체도 밋밋할 것이라는 생각은 기우다. 모든 레이스가 촌각을 다투듯 흙먼지 레이스 역시 짜릿함과 반전의 드라마를 연출한다. 50cc 배기량에 작은 차체의 모터사이클이 흙 길을 쌩쌩 헤치고 나가는 모습은 앙증맞으면서도 당당했고, 무제한전이 보여준 다양한 체급의 모터사이클이 함께 달리는 모습은 배기량을 무색하게 할 만큼 각축전을 벌였다.
또한 안전이 보장되고 레이스에 방해가 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자유롭게 구경할 수 있기 때문에 생동감이 넘친다. 불과 2~3미터 앞에서 코너를 돌고 추월하고 넘어지는 광경을 보게 되니 관람의 재미가 배가 될 수 밖에 없다. 우사인 볼트의 경이로운 100m 달리기를 관람할 때보다 학교 운동회에서 친구들끼리의 경쟁이 때로는 더 재미있지 않은가.
레이스 내내 모두가 열광했지만 특히 100cc전과 125cc전, 그리고 무제한전에서 125cc가 우승하는 장면 등은 흙먼지 레이스의 취지와 가장 어울리는 순간들이다. 일상 생활에서 가장 많이 접할 수 있는 배기량 125cc 이하의 모터사이클로도 충분히 잘 달릴 수 있고, 충분히 즐거울 수 있다는 의미를 보여준다.
아마추어의 매력
그리고 레이스만큼이나 흙먼지 레이스가 재미있는 또 다른 이유는 사람들 스스로가 즐기기 때문이다. 결국 레이스를 위한 행사지만 1박 2일간의 행사를 휴가 삼아 놀러 오듯 드넓은 흙 밭에 텐트를 치고 불을 피워놓고 고기를 구워 먹으며 캠핑을 한다. 친구와 연인, 가족 단위 등 대부분이 단체로 놀러 왔기에 분위기는 더욱 화기애애하다.
이뿐만이 아니다. 참가한 사람들의 모터사이클도 클래식 모델부터 각각의 개성을 살린 커스텀 모델들이 대부분이라 구경하는 재미 또한 쏠쏠하다. 자동차로 오토캠핑을 하러 온 사람만큼이나 모터사이클로 모토캠핑을 하러 온 사람도 상당수다. 간단한 모터사이클 부품부터 자체 제작한 액세서리 및 티셔츠 등을 장터에서 판매하기도 하며 흙먼지 속에서 즐길 거리를 알차게 꾸렸다.
또한 각 클래스에서 수상을 한 참가자들에게 나눠 줄 메달은 카페에서 주문 제작으로 준비해 정성이 돋보였고, 커스텀 개러지에서 만든 트로피는 모터사이클 부품으로 조립해 참신하면서도 독특한 모양이다. 레이스 참가자들의 축하와 더불어 커스텀 및 순정 모터사이클 콘테스트도 진행해 최다 득표를 얻은 사람에게도 영광의 순간을 나눴다.
이처럼 흙먼지 레이스는 하나부터 열까지 참가자들 스스로가 꾸려왔다. 옛날 비포장 시골길을 달리던 때를 떠올리게 하는, 우리나라에서 경험할 수 없었던 레이스 문화를 만들었지만, 이 특별한 레이스에 ‘프로’다운 모습보다는 ‘아마추어’다운 사고방식을 고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