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데이비슨은 크루저와 투어러에 능통하다. 여유로움과 자유를 상징하며 라이딩의 감성을 중시한다. 쭉 뻗은 도로 위를 달리든 경치 좋은 해안도로 혹은 산 속 고갯길을 달리든, 할리데이비슨만의 느긋하고 풍요로운 라이딩 감각이 있고, 속도보다는 그 곳의 자연과 바람을 충분히 만끽하며 달릴 수 있다. 때문에 할리데이비슨은 스피드, 즉 레이스와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할리데이비슨의 레이스 역사는 굉장히 오래됐다. 대부분의 모터사이클 제조사의 탄생 시기보다도 일찍 시작했다. 한 없이 느긋하고 유유자적 달릴 줄만 알았던 할리데이비슨은 사실 누구보다도 모터스포츠에 열광하는 브랜드다. 그들이 1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걸어온 길에는 뜨거운 레이싱의 피가 깔려 있다.
할리데이비슨의 설립 시기는 지금으로부터 114년 전인 1903년, 그들이 자사 최초로 제작한 모터사이클인 시리얼 넘버 원(1903년)은 레이스용 모터사이클이었다. 물론 일반인에게 판매하는 기종이었지만, 레이스를 염두에 두고 제작했던 것을 감안하면 그들의 레이스에 대한 열정이 남달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할리데이비슨이 처음으로 레이스에서 두각을 드러낸 시기는 1908년, 지금으로부터 무려 109년 전이다.
할리데이비슨의 창업주 중 한 명이자 초대 사장이었던 월터 데이비슨(walter Davidson)은 1908년에 FAM(Federation of American Motorcyclists)에서 주최한 내구레이스에서 우승을 거머쥐며 할리데이비슨의 이름을 알렸다. 이듬해인 1909년에도 세 명의 라이더가 출전해 우수한 성적을 거뒀다. 그리고 1913년, 할리데이비슨은 레이스 관련 부서를 설립했다. 그리고 1914년에 생겨난 레이스 팀은 구조대(wrecking crew)라는 이름으로 당시 경쟁상대였던 인디언과 엑셀시어를 누르고 막강한 실력을 선보이며 할리데이비슨과 함께 주가를 올렸다.
월터 데이비슨은 뉴욕의 캐츠킬 산맥에서 개최한 레이스에서 1,000포인트를 얻어 우승했다
FAM은 1919년에 레이스 규정과 이를 비롯한 기록과 라이선스 등의 자료를 M&ATA(Motorcycles and Allied Trades Association)에게 넘겨준다. M&ATA는 이를 바탕으로 보다 체계적으로 성장하며 레이스의 틀을 갖추는데 집중했다. 그리고 1924년에 AMA(American motorcycle association)부서가 설립됐다. 1920년대부터 1930년대를 주름잡던 레이서인 Joe Petrali(조 페트랄리)는 당시의 AMA에서 주최했던 레이스에서 할리데이비슨의 모터사이클을 타고 수 많은 우승을 차지하며 할리데이비슨을 대표하는 레이서로 자리매김했다.
조 페트랄리는 1930년대에 더트 트랙 및 힐 클라임 등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두각을 나타냈다. 또한 1937년에는 데이토나에서 219km/h를 주파하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1930년대 미국의 모터사이클 시장은 하락세였다. 할리데이비슨과 인디언을 제외한 거의 모든 미국의 모터사이클 제조사가 문을 닫았고, 레이스도 활발하지 못했다. 때문에 AMA는 레이스와 모터사이클 시장을 일으키기 위해 새로운 레이스 규정인 클래스C를 만들었다. 클래스C는 일반 라이더들도 참가할 수 있는 클래스였고, 이를 위해 할리데이비슨은 1941년에 WR을 공개했다. WR은 플랫 트랙 레이스에 출전했으며, 로드 레이스도 참가하기 위해 WRTT도 제작했다. 기존의 WLDR보다 가벼운 무게에, 각각의 레이스 특성에 맞게 개량해 각 무대에서 활약했다.
1952년에 데뷔한 K 모델은 기존의 할리데이비슨과는 달랐다. 프론트 서스펜션은 텔레스코픽을 채용했고, 리어 서스펜션은 더블 쇽업소버를 장착했다. 또한 기존의 W, E, F 모델들과 달리 왼쪽 핸들그립 앞에 클러치 레버를, 시프트 페달은 오른발로 사용할 수 있는 변속 방식을 적용했다. 그리고 K 모델과 WR 모델을 재구성해 레이스 버전으로 제작한 것이 KR이다. 1954년, AMA는 더트 트랙, 하프 마일 더트 트랙, 쇼트 트랙, TT(TT steeplechase), 로드 레이스 등의 다섯 개 부문으로 이루어진 그랜드 내셔널 챔피언십을 만들었다. KR과 KRTT는 동일한 750cc V트윈 엔진을 사용했지만 레이스 타입에 맞게 세팅에 차이를 뒀다.
이들은 1950년대와 1960년대의 할리데이비슨 레이스 역사에 많은 업적을 남겼다. 당시 조 레오나드는 1954년부터 8년간 더트 트랙에서 우승을 차지했고, 그랜드 내셔널 챔피언십을 비롯해 데이토나200 등에서 래리 헤드릭, 조니 깁슨, 브레드 안드레스, 로저 레이맨, 캐롤 레스웨버 등의 선수들과 함께 7년여 동안 할리데이비슨에게 우승을 안겨줬다.
1957년에 등장한 XL 스포스터는 OHV엔진을 탑재했고, 기존의 K 모델보다 가볍고 강력했다. 이듬해부터 XL을 기반으로 제작한 레이스 버전인 XLR과 XLRTT가 등장했으며, 경량의 저배기량 레이스 머신을 개발하기 위해, 아에르마키(Aermacchi)와 함께 단기통 엔진의 레이스 머신인 CR, CRS, CRTT 등과 2스트로크 2기통 엔진 기반의 RR250, RR500 등도 선보였다.
1970년, 할리데이비슨의 역사적인 레이스 머신 중 하나인 XR-750이 등장했다. AMA의 클래스C 규정이 새롭게 바뀌면서 이에 적합한 레이스 머신을 개발하기 위해 스포스터 기반으로 제작했다. 초기형 XR-750은 748cc V트윈 엔진을 탑재했지만, 출력이 다소 부족했고 엔진에 트러블이 있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1972년식 XR-750은 동일한 배기량을 유지했지만, 실린더 헤드를 알루미늄으로 교체했다. 또한 보어를 넓히고 스트로크를 줄여 엔진의 최고 회전수를 높이고 출력도 보강했다. 이는 할리데이비슨의 첫 번째 쇼트 스트로크 엔진이기도 했다. 더트 트랙용이었던 XR-750을 로드 레이스용으로 세팅한 XRTT는 XR-750의 프레임을 변경하고 카울을 씌웠으며, 휠베이스, 시트높이, 스티어링 앵글 등을 변경해 온로드 레이스에 적합하도록 재구성했다. 당시 클래스C의 규정에 따라 레이스에 출전하기 위한 XR-750의 호몰로게이션 모델 200대를 판매해야 했다.
XR-750과 XRTT는 197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30년이 넘는 기간 동안 AMA 그랜드 내셔널 챔피언십에서 엄청난 성과를 거뒀다. 당시 마크 브렐스포드, 칼 레이본, 개리 스캇, 제이 스프링스틴 등의 선수가 할리데이비슨과 영광을 함께했으며, 스캇 파커는 93번의 우승과 9번의 챔피언을 차지하기도 했다.
1994년에는 할리데이비슨 최초로 수랭식 엔진을 얹은 VR1000이 등장했다. VR1000은 수랭식 60도 V트윈으로 실린더당 4개의 밸브를 채택했으며, 10,000rpm에서 135마력의 최고출력을 발휘하는 등 본격적인 온로드 레이스을 위한 세팅을 갖췄다. VR1000은 데이토나200, 월드슈퍼바이크 등의 경기에서 크리스 칼, 톰 윌슨 등의 선수들과 참전했으나, 오랜 기간 동안 레이스에서 활약하지는 못한채 2001년에 레이스에서 철수했다. 하지만 VR1000은 후에 할리데이비슨의 수랭식 엔진 모터사이클을 발전시키는데 기여했다. 반면에 더트 트랙에서는 여전히 할리데이비슨의 성적이 우수했고, 2001년에는 17살의 여성 레이서인 제니퍼 스나이더가 더트 트랙에서 할리데이비슨에게 우승을 안겨줬다.
그리고 VR1000이 은퇴한 해인 2001년, 할리데이비슨은 NHRA(national hot rod assosication) 프로 스톡 드래그 레이스에 참가하게 된다. 여기에 투입된 머신은 수랭식 60도 V트윈 엔진을 탑재한 V로드다. 2004년에는 앤드류 하인즈가 21살의 나이로 NHRA 드래그 레이스에서 우승을 거머쥐며 최연소 챔피언을 차지했다. 이후에도 V로드는 여러 번의 우승을 차지하며 NHRA의 프로 스톡 모터사이클 부문에서 위상을 떨쳤다.
2016년에는 기존의 XR750을 대체하기 위해 스트리트750을 기반으로 제작한 XG750R을 선보였다. 그리고 2017년에는 스트리트 로드를 기반으로 한 드래그 레이스 머신을 공개했다. 할리데이비슨은 설립 초기부터 지금까지 레이스와의 연을 놓지 않았다. 우리가 알고 있는 할리데이비슨은 자유의 이미지가 강하다. 우리가 투어러와 크루저에 몸을 싣고 유유자적 라이딩을 하는 동안, 할리데이비슨은 피 튀기는 레이스의 현장 속에서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불사르고 있었다. 누구보다 빨리 달려왔던 할리데이비슨, 누구보다도 자유와 낭만을 그리지만 그 안에는 여전히 레이스를 향한 피가 끓고 있다.
글
조의상 기자 us@bikerslab.com
제공
바이커즈랩(www.bikerslab.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