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데이비슨의 심벌, 완생으로 가는 길

0
121

어떤 브랜드건 저마다의 상징이 있다. 그것이 무엇이든 대중들이 기억하고 있다는 것이 중요하고, 반대로 기억하게끔 만드는 것이 브랜드가 해야 할 일이다. 물론 일장일단이 있겠으나 한 번 얻은 이미지는,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더라도 사람들이 쉽게 떠올릴 수 있으며, 나아가 그 이미지를 대표하는 브랜드로 자리잡을 수 있다.

미국의 모터사이클을 대표하는 할리데이비슨도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상징성을 갖고 있다. 역경을 딛고 자국민과 함께 성장했기에 그들의 문화를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자사의 제품에 녹여낼 수 있었으며, 철저하게 북미에 특화된 차림새로 세계인에게 다가갔다. 때문에 할리데이비슨이 갖고 있는 여러 가지 상징들은 할리데이비슨을 대변할 뿐만 아니라 미국의 모터사이클 문화까지 조명한다.


낭만과 여유, 도로 위의 크루징

드넓은 자연이 펼쳐진 쭉 뻗은 도로 위를 한 대의 모터사이클이 달린다. 슈퍼스포츠나 고속 투어러를 타고 스로틀 그립을 끝까지 비틀며 빨려 들어가듯 속도의 쾌감을 맛볼 수 있다. 그러나 반대로 그 순간의 시공간을 최대한 즐기고자 유유자적 달리는 편이 바람을 즐긴다는 표현에 더 근접할지도 모른다.

어떤 모터사이클보다 느긋한 라이딩포지션의 크루저가 미국에 어울리는 이유다. 일부 번화가의 도심을 제외하면 붐비는 교통체증도 없으며, 끝도 없이 펼쳐진 한산한 도로에 나 홀로 사색에 잠긴 라이딩을 떠날 수 있다. 넉넉한 배기량은 쥐어짜기 보다는 한 템포 늦추고 피스톤의 박자에 맞춰 함께 흘러가면 된다. 팔과 다리는 힘을 빼고 앞쪽으로 쭉 내밀어 가장 편안한 자세를 취한다. 갑자기 끼어드는 자동차도 없고, 가다 서다를 반복할 일도 적어 조작도 여유롭다. 빨리 달려야 할 이유도 날카롭게 와인딩을 파고들 필요도 없다.

낮고 긴 차체 그것도 하드테일의 유려한 라인을 잃지 않고 유지하는 소프테일 시리즈가, 크루저를 그리고 할리데이비슨을 대표한다. 크루저는 할리데이비슨이 가장 오랫동안 연구하고 매진한 장르이기에 노하우가 남다르다. 크루저 안에서도 다양한 스타일이 있으며, 개중에는 꽤나 민첩한 움직임을 자랑하는 기종도 있다. 또한 스포스터 시리즈는 젊은 라이더의 감각과 커스텀을 투영할 수 있는 라인업으로, 도심에서도 간편하고 멋스럽게 크루징을 즐길 수 있다.

물론 크루저뿐만이 아닌 투어러도 상당한 경쟁력을 갖고 있다. 넓은 대륙을 장시간 라이딩 하기 위한 넉넉하고 안락한 모터사이클도 할리데이비슨의 주 종목 중 하나이며, 편의기능으로 무장해 동승자까지 쾌적한 라이딩을 선사한다. 결국 수치에 얽매이지 않은 자유로운 감성 라이딩에 의거한 모터사이클을 추구하는 것이 할리데이비슨이고, 낮고 긴 차체의 모터사이클을 보면 은연중에 ‘할리데이비슨’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이다.


V트윈, 할리데이비슨의 영원한 심장

또 다른 할리데이비슨의 상징은 바로 공랭식 V트윈 엔진이다. 100년넘게 할리데이비슨이 지켜온 것 중 하나로, 1909년부터 V트윈 엔진을 모터사이클에 탑재한 이래 지금까지 기본 틀을 유지하고 있다. 수랭식 엔진과 고성능이 즐비한 현 시점에서 여전히 공랭식 V트윈으로 까다로운 환경규제도 통과하고 마니아층를 충족시키고 있다.

물론 공랭식 엔진은 여전히 존재한다. 더욱이 레트로가 트랜드인 지금은 오히려 공랭식 엔진의 매력과 감성적인 측면을 선호하는 라이더도 많다. 이 밖에도 공랭식 엔진은 기계의 조형미를 비롯한 나름의 장점을 갖고 있기에 단순히 구식으로 치부할 수 없다.

할리데이비슨의 V트윈 엔진은 45도 각도를 유지해 특유의 고동을 갖고 있으며, 공랭식 엔진의 장점인 단순한 구조와 멋스러운 외관, 정비의 용이성 등을 최대한으로 활용한다. 그렇다고 할리데이비슨이 수랭식 엔진을 만들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차퍼 등과 함께 발달한 미국의 커스텀 문화에 할리데이비슨이 여전히 인기 있는 이유 또한 공랭식 엔진이기에 가능했던 측면도 있다.

수랭식 엔진보다 구조가 간단하고 부품의 수가 적어 커스텀이 용이하고 외관이 훨씬 깔끔하다. 세계대전 후에 집으로 돌아온 젊은 군인들은 히피 문화와 개성을 중시하는 사회적 풍토와 함께 모터사이클의 커스텀 문화를 누렸고, 누구나 손쉽게 다룰 수 있는 공랭식 엔진의 구조는 지금까지도 사랑 받고 있다.

또한 45도 V트윈 엔진을 시대가 변함에 따라 세대를 거치고 개량을 거듭해 높은 완성도로 빚어냈다. 불필요한 진동은 줄이고 열효율을 높이면서 성능과 환경규제를 만족하며 성장해온 V트윈이기에 할리데이비슨의 상징으로 자리잡을 수 있었다.


호그, 새 생명을 불어넣다

힘들 때 곁에 있어준 친구야 말로 진정한 친구라 않던가. 할리데이비슨에게 호그(H.O.G., Harley Owners Group)도 이와 비슷하다. 한때 유럽과 일본 모터사이클의 공세에 밀려 어려움을 겪던 할리데이비슨은 1969년에 AMF에 인수됐다. 재정난과 실추된 이미지를 되살리기 위해 1981년에 다시 독립의 길로 들어섰고, 재도약과 함께 할리데이비슨의 동호회를 지원하며 라이더와 함께 일어서는 계기를 마련했다. 1983년, 호그의 시작이다.

호그는 할리데이비슨의 모터사이클을 타는 오너들의 모임이다. 호그는 약 3,000여명의 회원수로 시작했지만, 현재는 전 세계 약 백 만 명 이상의 멤버 수를 자랑한다. 물론 국내도 예외는 아니며, 이처럼 수 많은 인원이 결속력을 갖고 지지하는 브랜드는 할리데이비슨이 유일하다. 창립 1년 후부터 진행한 ‘호그 랠리’는 지금까지도 명맥을 유지하며 호그를 대표하는 퍼레이드로 자리잡았고, 각 나라의 지역에 자리한 천여 개 이상의 챕터가 저마다의 특색을 가지고 호그 챕터를 다채롭게 운영하고 있다.

할리데이비슨이 어려웠던 시기를 딛고 재기할 수 있었던 근간에 호그의 공은 매우 컸다. 호그 멤버 역시 할리데이비슨이 다시 일어서는 모습을 누구보다 옆에서 함께 했기에, 단순히 해당 브랜드의 동호인을 넘어 울고 웃는 과정 속에서 끈끈한 전우애로 다져졌다. 이렇듯 할리데이비슨과 호그는 역경 속에서 공생을 택한 남다른 감성으로 맺어진 특별한 인연이다.

낮고 긴 차체에 V트윈 심장을 품고 전세계로 뻗어나간 할리데이비슨이다. 올곧게 지켜온 공랭식 V트윈 엔진은 결국 누구도 넘볼 수 없는 할리데이비슨의 심장이 됐고, 누구보다 크루저의 매력과 특성을 잘 이해했기에 크루저는 할리데이비슨이라는 공식을 세웠다. 나아가 자신의 브랜드에 애정을 갖는 라이더와 지속적인 교류를 통해 상생의 본보기를 이뤄냈다. V트윈 크루저에 올라 탄 당신은, 이미 할리데이비슨의 상징이다.



조의상 기자 us@bikerslab.com
제공
바이커즈랩(www.bikerslab.com)